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기온도 조금 내려가서, 날씨가 훨씬 시원해진 느낌이다.
더위가 한풀 꺾였나 싶은데… 아니지, 아직은 8월.
이 비가 그치면 또 늦더위가 몰려오겠지.
창밖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도 조금 느슨해진다.
이럴 때는 괜히 오래전의 일들이 떠오르고, 그 기억들이 오늘 하루의 빛깔을 바꾸곤 한다.
말씀 묵상을 마치고 브런치를 둘러보다가, 문득 내가 처음 이곳에 발을 조심스럽게 들였던 날이 생각났다.
그날, 부족한 내 글에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 주셨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이유 없이 콩닥거렸다.
글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 유리’라는 한 사람이 이곳에서 첫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소중했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내 글도 조금은 빛을 머금게 되리라 믿었다.
지난 4월 전정신경염을 앓은 후유증으로 귀가 엄청 예민해졌다.
처음에는 나를 구독하는 모든 분들을 같이 구독하다가, 내 귀가 너무 힘들어해서,
어느 날부터는 몇 분만 남기고 모두 취소를 눌렀다. 그렇다고 그분들을 잊은 것은 아니다.
나는 매일 그 처음 받은 마음을 다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어떤 글은 끝까지 읽고 좋아요, 꾸욱~
어떤 글은 조금 읽다가 “이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노력한 마음이 느껴진다.” 하며 또 꾸욱~
구독해 주신 분들 중에는, 내 마음이 여유로운 날이면 한 분 한 분 찾아가 좋아요를 누르곤 한다.
그분들이 남겨 준 구독이라는 작은 표시가, 사실은 나에겐 큰 격려였기 때문이다.
아침까지 100명이 넘는 분들의 구독이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는 것, 그것이 내가 좋아요를 누르는 이유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는 글도 있었다.
그럴 땐 ‘참 잘 썼어요.’ 하며 기꺼이 눌렀다.
그러다 보면 알림 소리가 다시 울린다.
“저분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얼굴은 모른 채 글로만 연결된 세상, 그냥 이대로가 좋았다.
라이킷보다 ‘좋아요’라는 단어가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내게 익숙한 말이라서일 것이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날이 있다.
나에게 시어머님은 친엄마 같았다.
9남매 중 여덟째, 아들로는 5번째라, 막내며느리라서 그랬을까, 어머님은 내게 손녀를 대하듯 정을 주셨다.
아버님이 먼저 가시고도 혼자 잘 지내셨는데, 이웃에 둘째 형님 댁이 있어 멀리 사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었는지 모른다.
연세가 드신 뒤로는 폐렴을 앓으셨고, 그렇게 3년을 버티셨지만 끝내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날,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댁 동네에서 산만 넘으면 장례식장이 있다 했다.
삥 둘러 가는 길은 너무 낯설어서, 그냥 산길을 택했다.
아직 어린 아들 둘이 뒷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마음은 더욱 불안했다.
그날은 유난히 안개가 자욱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핸들을 잡은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온몸이 바짝 긴장한 채, 조심조심 산을 내려갔다.
그 순간, 차 안에는 빗소리와 내 숨소리만 가득했다.
남편은 따로 다녔다.
먼저 가고, 나중에 오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비가 내렸다.
아이들 앞이라 두려움을 내색할 수 없었다.
막내며느리라 눈치 보며 잔일을 제법 해내던 탓일까, 긴장이 풀린 순간이었는지 깜빡 졸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갓길 가드레일이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고속도로 위에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놀란 기색을 감추고 다시 핸들을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계속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무사히 집에 가게 해 주세요.”
다행히 두 아들을 데리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온몸의 힘이 풀렸다.
그때야 나는 비로소 숨을 깊게 내쉴 수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따라왔다.
그때의 감사와 안도는,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 빗소리처럼 남아 있다.
글 · 연출: 유리 / 그림: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