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문 쉼, 꼭 필요한 숨결
그날, 우리는 또다시 짐을 챙겼습니다.
짧았던 회복의 시간을 뒤로하고, 더 넓고 체계적인 치료를 받으러 대학병원 재활과 병동으로 옮겨왔습니다. 복도는 낯설었고, 벽은 하얬습니다.
멀리서 기계음이 울리고, 휠체어 바퀴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여기가 새로운 시작이자 또 다른 훈련장이겠구나.
재활병동에 들어섰을 때, 저는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신경과 병동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었는데, 이곳은 마치 전쟁터에서 후방으로 옮겨온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서로 병실을 오가며 안부를 묻고, 보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어떤 보험을 들었냐.”
“나는 이런 보험이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
치료 못지않게 그런 대화가 중요한 일처럼 오갔습니다.
재활병동은 어색하면서도 무슨 동아리 모임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한 병실에 같이 있고, 동병상련의 마음 때문일까요.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친근한 모습들이 내게는 너무 낯설었지만, 저도 이 분위기에 녹아들어야 하나 보다 싶었습니다.
남편 침대는 문 옆, 수돗가 바로 옆이었습니다. 편한 점도 있었고,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유치원 일은 접어두고, 남편 병간호에만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잠깐 와서 교대해 주면 집에 가서 씻고, 잠깐 눈 붙였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처음엔 기도 삽입이 되어 있어서 재활치료를 바로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도 삽입을 너무 오래 해서였을까요. 빼는 도중 혈관을 건드려서, 또 멈춰야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고 나서야 다시 시도할 수 있었고, 결국 기도 삽입관을 뽑아냈습니다.
그다음은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유동식만 먹어왔으니, 죽이라도 삼키려면 ‘삼킴’이 되어야 했습니다.
말은 쉬운데, 그게 참 쉽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예약하고, 또 확인하고, 통과되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그런 기억도 희미해서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삼킴검사를 위해 병실을 나섰던 날들이 몇 번이나 있었던 것만은 기억납니다. 삼킴 치료도 받았던 것 같은데, 그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물리치료실과 인지치료실로 옮겨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석 달 넘게 누워 지냈고, 그 사이 몇 번은 의식 없이 오래 누워 있었던 탓에 남편의 몸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대로 앉는 것도 힘들어, 자꾸만 옆으로 쓰러져 눕는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움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는 건 제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즐거운 척— 그렇게라도 저를 지켜야 남편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균형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남편은 그렇게 한 달쯤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다른 재활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응급 처치까지만 하고, 환자를 다른 재활병원으로 내보내 치료를 이어가게 하는 구조라 했습니다.
이렇게 대학병원에서의 생활은 막을 내리고, 다시 근처의 다른 재활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저의 기억세포 조각들을 모아 만드는 글이라 쉽지는 않습니다. 13년이란 세월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이야기를 할 때 웃을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에는 여러 재활병원 정보를 모아 둔 카탈로그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담당자분을 만났는데, 다인실에 빈 침대가 없으니 먼저 1인실에 입원했다가 다인실이 비면 바로 옮겨 주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부담감을 느꼈지만, 막상 1인실로 들어가 다른 다인실의 병실을 보니 가기가 싫어졌습니다.
딱 한 달만, 나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니 이곳에서 한 달만 큰맘 먹고 1인실에 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또 다른 병원의 재활치료와 나의 쉼을 통해 제 마음은 차츰 안정을 찾았습니다. 물리치료와 인지치료를 병행하면서 그곳의 한 달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좋은 안식처 같았습니다.
서점에서 한 책이 눈에 들어왔는데, 아마 나의 현실 때문이었을까요. 제목은 **〈수호천사〉**였습니다.
그 병원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엄청 두꺼운 소설이었는데도 술술 잘 읽혔습니다. 478쪽이나 되는 책이었지만, 한 달 동안 다 읽었습니다. 그 뒤로는 다시 읽지 않았습니다. 그 한 번의 읽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잠시 다른 세계에서 숨을 고른 듯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1인실에는 화장실 겸 샤워실도 있었는데, 옆 병실의 아줌마들이 가끔씩 즐겨 찾는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문 앞에서 짧게 안부를 나누곤 했습니다. “여긴 참 좋네, 부럽다.” 그 말에 나도 괜히 웃음으로 대답했습니다. 낯선 병원에서 오가는 그 한마디가 의외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뒤에 받쳐 주는 힘이 없으면 곧 쓰러지곤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남편의 담담한 모습에 저도 조금씩 용기를 얻었습니다.
웃음이 회복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 웃음은 오래 참고 기다려 얻은 작은 숨결 같았습니다. 잠시였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