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오늘 어떤 분의 글을 읽으면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출신이라 유치원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엄마의 잔심부름과 동네 친구들과의 놀이 활동이 초등학교에 가기 전의 나의 조기교육일 수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나의 아버지는 그 초등학교의 교감선생님이셨는데, 담임선생님들은 대부분 나에게 친절했던 기억이다.
1학년 때는 방과 후 남아서 받아쓰기를 잘 못해서 남은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초등학교(국민학교)는 즐거우면서도 왕 부담을 안고 있는 나였다.
물론 졸업 때는 6년 우등에, 6년 개근상을 받았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친구들은 쉬는 날이었지만, 나는 울면서 10리 길을 다녔다.
그렇게 어린 내가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항상 꼬리표는 울 아버지가 붙었다.
내 이름보다 누구의 딸~
6학년 2학기에는 아버지의 명함이 교장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의 영광인지 아버지의 후광인지 모르게 졸업하고, 언니, 오빠들 모두 도회지로 유학을 갔는데, 나는 막내라고, 또 집에 자식이 하나는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처럼, 초등학교에서 더 먼 곳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어린 마음에 야! 이제 아버지의 구속에서 멀어졌구나 하며, 공부는 항상 뒷전에 두었다. 하지만, 아버지 이름의 꼬리표는 중학교, 아니, 고등학교에도 영향이 있었다.
어릴 적 너무 공부 공부가 나를 괴롭혔는데, 이제는 아버지 직업을 적은 것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공부에게 조용히 반항하며 산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 철이 들었다.
공부가 내 생애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나의 아버지, 어릴 적에는 너무 무서운 분이셨는데, 20세 이후의 나의 삶에는 그 후광이 참으로 감사하다.
늦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결혼해서 살면서 내가 힘들어하면 다른 자식들 몰래 도와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섬세하시고, 자상한 분이셨는데, 그리운 나의 아버지...
어릴 적 조용한 반항아로 아버지의 속을 많이 끓였는데, 내가 유치원 교사라는 말에도 너무 좋아하셨는데, 지금은 글 속에서만 부를 수 있는 나의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글: 유리 / 그림: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