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어느 날부터 내 삶은 멈춘 듯했습니다.
남편이 쓰러진 그날부터
나는 전업주부이자 뇌병변 장애 환자의 보호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루하루, 숨을 고르듯 지내왔지만
나라는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저 꽃을 가꾸며,
내 삶을 잠시잠시 위로하는 시간들만이 이어졌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남편의 회복은 점점 멀어졌고
나에게도 건망증 같은 증상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어도 깊이 넣어두면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주 쓰는 물건은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두기로 했지만,
그럴수록 집 안은 늘 어수선했지요.
분명히 정리정돈을 열심히 하는데도
한 번 못 찾은 물건은 끝내 다시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하루에 한 장씩, 타자로 쳐보자.”
아침마다 묵상하는 말씀을
한글 타자로 또박또박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부분은 검색도 해보면서,
조금씩 나를 지켜갔습니다.
걷기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밖에 나가 걷지는 못했지만
집 안이라도 하루 만 보 이상 걸으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상이 자리를 잡나 싶었을 때,
갑자기 찾아온 전정신경염.
‘바이러스’라는 것이 귀를 통해 들어와
몸의 균형을 무너뜨렸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 회복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 삶이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폰을 열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내 마음을 조용히 건네는 글을 써온 적이 있었습니다.
카카오에서 ‘팁’이라는 Q&A 플랫폼이 한창이던 시절,
‘수채화뜨락’과 ‘햇살’이라는 이름으로
질문에 답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를 전하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운 좋게 금메달 상금도 받고,
은메달과 동메달도 몇 차례 받았었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심술을 부리는 이들도 많아졌고,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태클을 거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나는 원래 싸움은 잘 못해서, 그냥 조용히 나와버렸어요. ㅋㅋ
그땐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도
내 안의 무언가를 단단하게 다져주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몇 달 전 우연히 챗GPT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그림이나 한번 그려보자며 가볍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 안에서
내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쓰고 있더군요.
놀랍게도, 생각보다 빠르게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여정을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구나.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나를 이끄셨을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에
시댁의 장조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숙모, 첫째가 게임 프로그래머고 둘째가 웹툰 작가라고 자랑하라고요. 효과 있어요!”
그래도 나는,
그런 명함 없이도 내 이야기로 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 글처럼 말이지요.
살짝, 그렇게.
지금의 나는
어제도 감사하고, 오늘도 감사하며,
내일도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망증도 예전처럼 심하지 않고,
마음도 더 또렷해졌습니다.
물론, 여전히 집은 어수선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바쁜 삶이 되었지만—
나는 이제,
나를 넘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쓴 「초보 작가, 책 만들기 도전기」 글이 생각보다 많은 응원을 받아
기쁜 마음에 아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엄마, 그런 글은 한 번으로 족해요. 2편은 절대 쓰지 마세요.”
엄마 왈,
“아들아, 나도 그 정도는 안단다. 걱정하지 마라~ ㅋㅋ”
작은 웃음 한 줄,
그리고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유리 / 그림: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