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무너졌던 날, 그러나 주님은 놓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큰 아픔 이후, 제 세상적인 삶은 모두 멈췄고, 그때부터 저는 오롯이 남편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남편의 재활을 위해 병원에 가던 길에 몇 번 넘어졌는데, 어느 날 새벽에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잠이 깨어, 자는 아들을 깨웠습니다.
“아들아, 아무래도 내 다리가 이상한 것 같아. 너무 아파서 힘들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 봐야겠어.”
웬만하면 아픔을 잘 참는 엄마가 아프다고 새벽에 깨우니 아들은 두말없이 일어나서 챙겼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정형외과 응급실로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정형외과는 밤에 의사 선생님이 없어서 아침에 다시 외래로 진료를 보라고 했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말씀드리고, 아침에 외래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발목도 살짝 돌아갔고, 무릎에 인대가 파열되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속이 상했지만 울고 싶어도 꾹 참았습니다.
“선생님, 사실은 남편이 집에 누워 있는 환자라 제가 입원이 어렵습니다.” 하고는 그냥 나왔습니다.
아는 지인의 소개로 조금 더 먼 곳이지만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또 사진을 찍었습니다. 똑같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선생님은 이해한다는 듯이 그러면 외래 진료로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면,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이겨내야지 하면서 아픔을 참았습니다. 매일 정형외과에 가는 것이 힘들어 주 3일 정도만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었습니다. 크다랗고 무거운,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신발을 신고 다녔습니다. 발목 교정을 위해 신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목발에 의지하면서 남편도 돌보며 다리가 빨리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견뎠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아픔은 가실 줄 모르고 더 심해졌습니다. 입맛도 없어지고, 차츰 몸무게도 줄어들었습니다. 화장실 가기가 힘들어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았는데, 안방의 곰팡이가 피었던 벽도 걱정되어 옥상에 방수공사를 했습니다.
공사를 하신 분이 요즘 잠을 못 자서 밤마다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아야 잠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누군가 그대로 두면 다리가 큰일 난다며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라고도 권했습니다.
저는 아픔이 고통스러워서, 가까운 한의원을 찾아가 제 다리 상태를 이야기하고 봉침을 주 2회 정도 맞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부터 잠도 오지 않고 숨 쉬기도 힘들었습니다.
“아! 왜 또 이런 현상이 생기지?”
속이 상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함도 질러 보았지만 제 몸은 조금씩 무너져갔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 보려 해도, 입맛을 잃어 억지로 몇 숟갈 떠먹는 식사로는 하루를 살아내기 힘들었습니다.
한의원에 가는 길에 앞집 언니를 만나 “언니, 입맛이 너무 없어서 힘들어 죽겠어요” 하고 말하고 한의원에 다녀왔는데, 그 언니가 작은 냄비에 추어탕을 한 냄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저는 그렇게 6개월 정도 남편과 내 자신의 아픔과 씨름하며 보냈고, 어느 날 한계가 왔는지 혈압이 엄청 오르면서 119를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위 세척까지 했지만 몸에는 다리 말고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왔지만 저는 계속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이 보다 못해 고집 센 엄마를 설득해 대학병원 정신신경과 진료를 받게 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에 눌러두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놓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얘기를 다 들으시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씀하시며 한 달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동네 내과에 가서 링거 주사도 맞고,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처방을 받아 복용했지만 낮에는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어 그 약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면서 마음이 차츰 가라앉고 숨도 쉬어졌습니다.
사막 같던 시간에도 하나님은 제 곁에서 여전히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9월 어느 날, 작은아들이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저는 용기를 내어 정형외과에 입원을 했습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아빠와 엄마 곁에 각각 1명씩 붙어 있었습니다.
2주에 걸쳐 발목과 무릎의 염증을 긁어내는 내시경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제가 병원에 들고 간 약이 다섯 가지 정도였습니다. 간호사께서는 챙기기 힘들다며 제가 직접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보름 후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동안 아들들이 나름 아빠를 돌봤지만 남편의 식사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장염에 걸려버렸습니다.
제가 퇴원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아들과 함께 남편을 다시 1주일간 입원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그나마 3주 정도 남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해 치료받은 기간이었기에 몸은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입맛도 돌아오고 정신도 맑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