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남는 빛
주님 앞에 머문 시간
“그가 여호와와 말하였으므로 그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한 후에
그 얼굴에 광채가 나 있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 출애굽기 34장 29절
하나님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한 사람의 삶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빛이 머뭅니다.
그 빛은 어떤 감정이나 열정보다 오래 머물고, 때로는 지쳐있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고 속에서부터 은은히 살아납니다.
모세의 얼굴에 빛이 머물렀던 것처럼 오늘도 그분 앞에 머문 삶의 흔적을,
작게나마 품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했던 시간, 그 거룩한 순간이 그의 얼굴에 남아 사람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얼굴에 난 빛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설명보다 더 깊은 증거였습니다.
그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를, 그 시간이 얼마나 깊었는지를요.
예전엔 그런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믿으면 정말 얼굴에 빛이 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상했던 그 빛은 하늘색으로 반짝이거나, 뽀얗게 빛나거나,
아무튼 예쁘고 특별한 빛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빛이라는 것은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니라,
어쩌면 마음에 먼저 머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요히 기도하고, 말씀 앞에 오래 머무는 시간들 속에서 주님의 자비로움과 인자하심을 생각할 때,
내 안에 스며드는 따뜻한 평안과 감사. 그런 것들이 어느 날, 아무 말 없이도
내 얼굴에 머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사람들은 그 얼굴의 빛을 보고 놀랐지만, 모세는 그 빛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 앞에 있었을 뿐이니까요.
오늘도 저는 조용히 말씀 앞에 앉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선포되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모세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마음에 새깁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주님 앞에 드립니다.
예전보다 빛이 흐릿한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지친 마음조차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께 다시 나아갑니다.
언젠가 어떤 이가 내게 말했던 성령의 향기, 온유함의 미소…
그 모든 것이 지금은 희미할지라도
그 빛을 다시 사모하는 이 마음만큼은 주님께 닿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는 오늘도, 주님 앞에 머무는 작은 거울이기를 바랍니다.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분의 얼굴을 닮고 싶습니다.
오래전, 어느 간증집회에서 뵌 분이 있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저는 맨 뒷자리에 앉았고,
멀리서 바라본 그분은 하얗고 빛나는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가까이에서 본 그 옷은 노란색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오늘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 내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인상은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빛난다’는 생각을 품게 했지요.
나는 오늘도, 주님 앞에 머무는 작은 거울이기를 바랍니다.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분의 얼굴을 닮고 싶습니다.
빛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것이니까요.
글: 유리 / 그림: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