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터널》13화

추적자, 흔들리는 마음

by 산여울 박유리





《황명 터널》13화 — 추적자, 흔들리는 마음




1. 추적자, 도로 위의 낯선 그림자


트럭은 조용한 도로를 달렸다.

엔진 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고,

바퀴는 오래 비를 맞은 아스팔트를 차분히 밟아 나갔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텅 빈 들판과 낮은 건물들뿐이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누군가 살았던 흔적들이

희미한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멀리 도시의 그림자가 보였고,

바람이 앞 유리를 스쳤다.

저 멀리 솟은 건물들 위로 떠오른 희미한 윤곽은

한때 사람들로 붐볐을 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이제 그곳은,

살아 있는 도시라기보다 거대한 빈 껍데기처럼 보였다.


유리는 뒷좌석의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의 시선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너머에 있었을 사람들의 삶을 더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출근을 서두르며 이 도로를 달렸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이를 태우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것이다.


거제에서 만났던 사람들,

정유를 나누고 눈이 밝아지던 순간들,

그리고 오늘 처음 만난 남자.


그 얼굴들이 한 장면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유를 손에 쥐고 떨리던 손,

눈빛이 흐릿하다가 조금씩 살아나던 표정,

가슴 깊은 곳에서 겨우 꺼내 놓았던 “살고 싶어요”라는 한마디.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살고 싶어 했다.

아주 작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마음일지라도,

그 한 가닥의 마음 때문에 그들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이 정유를 받아들여.


그 생각은 이미 유리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규칙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정유의 향은 누구에게나 맡을 수 있지만,

그 향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각자의 선택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사람을 살리는 건,

정유가 아니라 그 마음의 방향이라는 것을

유리는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속도를 줄였다.

트럭 안의 긴장감이 살짝 달라지는 것을 유리는 몸으로 느꼈다.


“앞에… 차가 하나 있네요.”


낡은 SUV 한 대가 도로 갓길에 멈춰 서 있었다.

먼지와 흙먼지가 차체를 덮고 있었고,

타이어 주변에는 시간이 한참 지난 듯한 자국들이 얼룩져 있었다.


보닛이 열려 있었지만

차주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엔진룸은 마치 누군가 한 번 들여다본 뒤,

일부러 열린 채 버려둔 것처럼 애매한 상태였다.


하린이 불안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이상해.”


그 말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하린의 몸은 이미 여러 차례 위험을 겪으며 작은 변화를 감지하는 법을 배웠다.


유리도 느꼈다.


차가 고장 난 느낌이 아니었다.

누군가 일부러 이 자리,

이 길 위에 세워 둔 느낌.

마치 미끼처럼,

‘어디로 가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물건처럼.


트럭이 가까워질수록

SUV 옆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일어섰다.


남자였다.

그는 트럭이 다가오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움직임에는 허둥댐이 없었고,

오히려 미리 시간을 맞춰놓은 사람처럼 차분했다.


그는 트럭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거웠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도망치는 사람의 걸음이 아니라,

다가오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정유를 알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단순히 “냄새가 난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 향이 가진 힘과 쓰임을 어딘가에서 이미 본 사람의 눈.


빛이 아니라

향기를 찾아 움직이는 눈.


선생님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트럭이 부드럽게 멈추면서,

잠시 주변의 소음이 모두 사라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남자가 가까이 와서 말했다.

“정유… 가지고 있지?”


그 목소리는 갈라져 있지 않았다.

굶주림이나 공포에 떨리는 사람이 아니라,

확신을 가진 사람이 내는 목소리였다.


하린이 숨을 삼켰다.

작은 소리가 목 안에서 끊기듯 멈췄다.


유리는 조용히 남자의 눈을 관찰했다.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눈동자 깊은 곳에 자리한 건

두려움보다도 계산과 판단에 가까운 빛이었다.


욕망이 아니라, 계산된 갈망이 있었다.

가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깔려 있었다.


남자는 트럭 문에 손을 올렸다.

마치 당연히 열릴 문이라는 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 향기, 우리가 필요해.”


‘우리가.’

그 한 단어에 유리는 걸음을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뒤에, 그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뜻일까.


유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향기는 욕심내는 사람에게 주지 않아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지금까지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남자가 웃음 없이 대답했다.

“우린 그 정유가 필요할 뿐이야.

이건 너희 선택이 아냐.”


그 말은 경고였다.

동시에, 자신들이 이미 ‘권리자’라고 믿는 사람의 말투였다.


SUV 안쪽에서 무전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잡음] “…대상 확인. 아이들이다.”

“…정유 확보하면 이동.”


깨진 소리 사이로 들리는 단어들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만큼 이미 상황을 분석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유리는 그제야 확신했다.


이 남자는 정유를 이용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관리’하고,

‘통제’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하린이 유리의 손목을 잡았다.

그 손에는 분명한 떨림이 있었다.

“우리… 어떡해요?”


유리는 선생님에게 눈짓했다.

도망칠지, 마주설지,

지금 이 한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의 많은 일을 바꿀 것 같았다.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문 잠궈요.”


짧고도 분명한 대답이었다.

아이들을 먼저 지키겠다는 어른의 선택.


하지만 남자는 이미 트럭 문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당장이라도 문을 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열어.

우린 너희들처럼 향기를 독점하려는 게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날카로웠다.

겉으로는 이성적인 말투였지만,

그 밑바닥에는 감정이 들끓고 있었다.

“통제 하려는 거지.”


그 한마디는

그들의 목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고백과도 같았다.



2. 흔들리는 마음


유리의 손이 정유병 위에서 멈췄다.

유리는 알았다.

정유를 쓰면 이 남자 안의 어둠이 드러나겠지.


하지만 지금은

분노가 아니라 공포가 채워진 눈이었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 어딘가에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사람 특유의 흔들림이 숨어 있었다.


이 남자는 죽을 수도 있어.

정유를 잘못 쓸 경우,

마음이 끝까지 닫힌 사람들은 향기를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정유는 심판하지 않아.

그 마음을 드러낼 뿐.”


유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벌레들에게는 정유 한방울이면 충분하지만,

사람에게는 그 한방울이 너무 강할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남자가 트럭 문을 더 세게 잡았다.

문이 삐걱하고 소리를 냈다.

“그 향기를 내놔—!”


쨍—!

문이 열리기 직전,

유리가 빠르게 정유병의 뚜껑을 돌렸다.


향기가 퍼졌다.

조심스럽게 병 속에 가두어 두었던 향이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숨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순간—

남자의 손이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아챈 것처럼

그의 움직임이 딱 멈춰 섰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지나가는 듯,

그의 시선이 허공을 헤매었다.


그의 숨이 가빠졌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처럼

숨소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 향기… 내 안에 있는 게—”

그의 몸이 떨렸다.

정유의 향기는

그가 숨기고 싶어 했던 것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정유가 그의 마음을 비추었다.


욕망. 두려움. 그리고 통제하려는 의지.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것을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마음.


남자는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렸는지,

바닥에 손을 짚으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명령하던 사람의 말투가 아니라,

길을 잃어버린 사람의 목소리였다.


유리는 천천히 말했다.

“살고 싶은 마음과

가지려는 마음은 달라요.”


그 말은,

유리 자신에게도 늘 되뇌어야 하는 말이었다.


남자는 멍한 눈으로 유리를 바라봤다.

“…나는… 어디서 잘못된 거지?”




3. 드러나는 그림자


그 말은 분노가 아니라

혼란과 깨달음이었다.

어쩌면 정유의 향은 이미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려 놓았는지도 모른다.


유리는 그에게 정유병을 건네지 않았다.

지금은 향기를 맡는 것까지만이 그의 한계라는 것을,

마음이 아직 그 이상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유리는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남자의 몸에서 벌레는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 말은,

그의 안에 아직 ‘완전히 먹어 치우려 드는 어둠’이

자리 잡지는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유리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을 본 기분이었다.

“당신도 머지않아 스스로 선택해야 할 거예요.”


정유의 향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언젠가 다시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그 사람의 몫이었다.


트럭이 다시 출발했다.

바퀴가 다시 도로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아이들의 어깨를 조금씩 풀어주었다.


남자는 도로 위에 혼자 남았다.

SUV 속 무전기에서

파열음이 터졌다.


[잡음] “대상 놓쳤다.”

“위치를 계속 추적해.”


남자는 그 소리를 듣고 천천히 웃었다.


“아이들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정유의 향은 숨길 수 없고,

언젠가 또 그들을 향해 흘러나올 것이었다.


유리 일행이 모르는 곳에서

추적이 시작되고 있었다.


첫 위협, 첫 흔들림.


그리고,

향기가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3. 폐 쇼핑몰


트럭이 도시 외곽에 들어섰을 때,

바람이 갑자기 싸늘하게 바뀌었다.

도시를 둘러싼 공기는

사람들의 숨이 오래 머물렀다가 갑자기 사라진 자리처럼

묘한 공허함을 품고 있었다.


건물은 높았지만, 텅 비어 있었고

유리창은 여기저기 깨져 있었다.

빈 상가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삐걱, 삐걱 작은 신호처럼 소리를 냈다.


하린이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눈동자 속에 비친 도시는

살아 있는 도시가 아니라

무언가가 지나간 뒤 남겨진 껍데기처럼 보였다.


“여기… 도시 맞지?”


“맞아.”

유리가 대답했다.

“부산보다 크진 않지만, 꽤 큰 도시였는데...”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 거리를 가득 채웠겠지.

카페 테라스에서 웃음소리가 터졌을 것이고,

주말이면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우리 저기로 가보자.”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쇼핑몰이 있었다.

유리의 손가락 끝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중심처럼 보이는 건물을 향하고 있었다.


유리와 아이들이 차에서 내렸다.

트럭 문이 한 번에 열리자

차 안에 갇혀 있던 공기가 바깥의 싸늘한 공기와 섞였다.


입구는 반쯤 파손되어 있었고

문이 깨진 채로 흔들리고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문틀에 달라붙어

햇빛을 받으면 희미하게 번쩍였다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작은 소리를 냈다.


하린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뭔가 소리가 들려.”


안쪽에서

퍽, 퍽,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 울렸다.

보통의 건물이라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들까지,

조용한 공간에서는 지나치게 또렷하게 들려왔다.


남학생 한 명이 손전등을 켰다.

한 줄기 빛이 어둠 속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위에 뭐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데…”


천장에 불빛이 닿는 순간,


천장 전체가 물결치듯 흔들렸다.

처음에는 먼지인 줄 알았던 것들이

차고 넘칠 만큼 많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제야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벌레들이다.”

유리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맞닥뜨렸던 장면이었지만,

이번에는 숫자가 달랐다.


어른 중 한 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수는… 지금까지 봤던 것보다 훨씬 많아요.”


천장과 벽이 뒤엉킨 듯한 검은 물결.

그 사이사이로 작은 다리들이 꿈틀대며 움직였다.


하린이 물었다.

“이렇게 많은 벌레가 모여 있는 건… 왜죠?”


유리는 주변 공기를 느끼듯 눈을 감았다.

이곳에 오래 쌓인 공기,

사람들이 오고 가며 남긴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이 식어버린 자리의 온도.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곳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쇼핑몰은 원래

사람들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 모이는 곳이었다.

사고, 먹고, 즐기고, 잊어버리는 곳.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 외로움, 버림, 방치된 감정.


곳곳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의 작은 어둠들의 흔적이

벌레를 끌어당긴 것이다.

벌레들은 단지 냄새만을 따라 오는 게 아니라,

그 냄새에 실린 ‘마음의 온도’를 따라 모였다.


아이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발 소리 하나도 크게 들릴 정도로

공간은 고요했지만…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흐름은

그 고요함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세계가

한 공간 안에 억지로 끼워져 있는 것 같았다.


쌍둥이 동생이 속삭였다.

“언니… 저거 봐.”


벌레들이 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벽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저 ‘많다’는 말로는 모자란,

‘넘쳐 흘러내린다’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뒤로 가!”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흐름이

그들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줘요!! 이리 좀 와봐요!!!”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외치는 절박한 부름이었다.


모두 달려가 보니,

쇼핑몰 푸드코트 한가운데에서

한 여자가 테이블 위로 올라 서 있었다.


흐릿한 조명 아래,

여자의 다리는 공포로 덜덜 떨고 있었다.


다리 아래에는 벌레들이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테이블 다리를 타고,

흐르는 물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여자는 울먹였다.

“살려주세요… 제발…”


그 목소리는

단지 목숨을 구해 달라는 말만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 자기에게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래된 눈물과 함께 뒤섞여 있었다.








13화 끝. 오늘도 구독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명터널의 웹툰연재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링크

[연재 브런치북] 황명 터널과 빛의 아이들 :웹툰화


황명 터널과 빛의 아이들 : 네이버 웹툰


글: 유리 / 그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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