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터널 장편소설 2부》
7화. 추적자의 메모
유리는 조용히 말했다.
“추적해도 좋아요. 난… 숨지 않아요.”
그녀의 손엔 정유병이 있었다.
때는 6월로 접어들어 날씨가 후덥지근했다.
간간이 쇼핑몰을 찾아 옷을 챙기기도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모두에게 여름옷이 필요했다.
오늘은 각자의 살았던 집을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하린이 현관문을 열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집 안에서
고요한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주방 식탁 위에는 아버지의 메모 하나.
“다녀올게. 저녁 전에 돌아온다.”
하린의 눈가에 조용히 눈물이 맺혔다.
“아빠… 나 이제… 괜찮아. 친구들이 많아.”
그리고 옷장 문을 열고 여름옷 몇 벌만 챙겨 가방에 담았다.
하린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이제 학생이 아니다.
하린은 청바지에 반팔 셔츠를 꺼내 입었다.
아버지와 함께 웃고 있는 마지막 사진.
그 사진을 가방에 넣고 나와 차에 올랐다.
이제는 유리의 집.
유리가 걸어가는 모습이 빗길에 길게 비쳤다.
쌍둥이 동생들도 뒤를 따랐다.
“언니… 이상해. 우리 집인데… 집 같지 않아.”
“괜찮아. 우리는 함께 있으니까.”
유리는 작게 웃었다.
“이 집은… 여기서 끝나도 괜찮아.
가끔씩 옷만 가지러 오자.”
현관문을 닫으며 유리는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고마웠어. 또 올게.”
차 안은 조용했다.
재온이 시동을 다시 걸었다.
부르릉—
그 소리는 묘하게 든든했다.
“이제 터널로 돌아갑니다.”
잠시 후 도착한 터널에서 그들은 조금 놀랐다.
백합나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줄기에 스친 칼자국과
뿌리 근처의 흙이 살짝 파헤쳐져 있었다.
선생님이 살펴보며 말했다.
“누군가 또 다녀갔군요.”
백합나무 옆,
돌멩이 아래에 종잇조각이 접혀 있었다.
유리가 종이를 펼쳤다.
“우린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차”
재온이 미간을 좁혔다.
“차…?”
“지켜보게 둬요. 하지만 따라오게 두진 않을 거예요.”
유리는 백합나무가 있는 곳에 천천히 다가가
작은 상처들을 어루만졌다.
“살짝 아픔을 겪었지만,
백합나무는 욕망을 허락하지 않아요.
이 나무는 스스로를 지켜내는 능력이 있어요.”
“우리 이제 역할을 나눠요.”
학생들, 어른들, 청년들.
각각의 눈동자가 유리를 향했다.
유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정유를 지키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퍼뜨리는 거예요.”
유리는 재온과 솔을 바라보았다.
“두 분이 카페랑 여기에서 있어 주세요.
이제 밖은 몇 명만 다니기로 해요.
가볍게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나랑, 선생님, 하린, 남학생 두 명,
그리고 내 두 동생들.
이렇게 일곱 명은 밖으로 돌고,
나머지 분들은 이곳에 있어 주세요.”
“그리고 혹시 나쁜 자들의 습격이나,
벌레들은 다니면서 보셨죠.
그때처럼 하시면 돼요.”
말 대신, 재온과 솔의 눈빛이 사명감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모두 터널 벽에 기대어 눈을 붙였다.
잠깐이지만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음의 긴장을 풀었다.
그때였다.
터널 천장에서 뚝 하고 방울이 떨어졌다.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비가 새나?”
재온이 손전등을 비추자 하수관 틈이 벌어진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가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거렸다.
“또 모여 있어… 이번엔 더 많아.”
“언니, 왜 저렇게… 한 방향으로 움직여요?”
유리는 정유병을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벌레들이 우리를 적으로 알고 있나 봐.”
정유의 향기가 조용히 퍼졌다.
그 순간—
벌레 덩어리의 한쪽은 벽을 타고 도망치고,
다른 한쪽은 그대로 굳어 움직임을 멈췄다.
재온이 낮게 말했다.
“…누군가 저들을 움직이고 있네요.
의지가 없는데 방향이 있다면… 조종당하는 겁니다.”
해가 떠오르자
터널 입구로 따뜻한 빛이 스며들었다.
백합나무 잎 끝에는 밤새 고인 정유 방울들이
금빛 이슬처럼 반짝였다.
유리는 병 여러 개를 나란히 놓고
조심스럽게 향을 채웠다.
“이건 우리가 전할 마음의 크기예요.”
선생님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는 거죠?”
“네.”
차는 조용히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하루로 나아갔다.
남학생이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편의점 앞,
“제발… 물… 없나요…?”
하린과 유리가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여자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열이… 며칠째 내려가지 않아요…
병원도 닫혔고… 아무도…”
유리는 무릎을 꿇고 아이의 이마를 만졌다.
뜨겁고 빠른 숨.
“잠시… 향을 맡게 해 주세요.”
여자는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병을 보았다.
“그게… 약인가요?”
“약은 아니지만,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줄 거예요.”
뚜껑을 열자 아이의 숨소리가
조금씩, 아주 천천히 고르게 바뀌었다.
후우…
후우…
여자의 눈이 떨렸다.
“지금… 뭐죠… 무슨 일이…?”
“향은… 마음을 비춰요.”
아이의 얼굴이 편안해지자
여자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이걸… 제가 가져도 되나요…?”
“네, 힘든 사람이 있으면 그때 사용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골목에서—
“네가 숨겼지! 식량 어디 뒀어!”
“내가 왜 숨겨! 너나 감염된 거 아니냐고!”
유리가 다가가며
정유병의 뚜껑을 살며시 열었다.
“멈추세요.”
“너 뭐야!”
순간—
“난… 겁이 났던 거야…”
“…미안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하린이 조용히 물었다.
“다음은 어디예요?”
사람이 몰려 있고,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하는 곳.
“…병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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