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 한참을 붙들고 생각하다 보니, 결국 두 가지 단어가 남았다.
선택지와 기대치였다.
선택지가 많고,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가 살아 있을 때 비교적 삶이 가볍게 느껴졌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를 넘어서거나 스스로 세운 기준을 넘어설 때 나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문제는 그 기대가 언제부터인가 내 것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내가 언제부터 ‘어떻게 살고 싶은가’보다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를 먼저 계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공동체와 조직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오다 보니, 기대는 자연스럽게 쌓였다.
지금까지 이만큼 해냈으니 앞으로도 이만큼은 해낼 것이라는 암묵적인 증명.
그 기대를 충족시킬 때마다 기준은 조금씩 올라갔고, 기대치는 어느 순간 나의 역량 한계와 거의 겹쳐졌다.
10대 때도 20대 때도 느끼던 감정과 상황이 30대에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선택지는 줄어들기 시작한다.
선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안해지고, 선택을 바꾸는 일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유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진 방향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책이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과연 나를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공동체가 요구하는 안정적인 모습에 나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가.
얼마 전, 친한 동료 교사들과의 자리에서
"요즘 불행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쉽게 부정할 수 없었다. 힘들어서라기보다,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흐릿해진 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독거노인이 되어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기대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러다 보니 최근 사놓고 잘 꺼내보지 않던 책을 다시 펴보고 있다.
이 책은 선택지의 많고 적음보다, 그 선택이 누구의 기대를 향해 있었는지를 묻게 만든다.
읽고 난 뒤 삶이 즉각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하나의 질문은 분명해졌다.
앞으로의 선택에서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