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명언산책] 볕뉘 같은 작은 친절

by 동네과학쌤

열등감 이론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울하다는 환자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밖으로 나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세요." 그러자 환자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닙니다." 아들러는 다시 요청했다. "그러면 친절을 베푸는 상상만이라도 해보세요!"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가장 경이로운 방법은 누군가를 위해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남을 돕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긍정적인 변화를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한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미소를 짓건, 작은 선물을 하건, 짐을 들어주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건,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작은 일한가지를 하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최대의 수혜자는 우리자신이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라. -플라톤

비평준화 지역에서 입결이 나쁘지 않은 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입학 당시 큰 꿈과 기대를 품고 들어왔지만 자기 뜻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아 스스로를 비판하며 위축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자꾸만 내 학창 시절의 모습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열등감 이론을 창시한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열등감을 품고 있으며, 이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열등감을 올바르게 인식하면 삶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억누르거나 방치할 경우 무력감과 우울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타깝게도 내 경우에는 종종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열등감이라는 그림자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친구들보다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악착같이 공부하며 그 결핍을 채우려 했다. 그러나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이루지 못한 부분만 눈에 더 크게 보였고, 결국 열등감은 더욱 커졌다. 나는 점점 남들의 눈치를 보고 자격지심을 키우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이 되었다.

교사가 된 후에도 내 안의 열등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향적인 성격(INTP이다) 탓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쉽지 않았던 나에게 교직사회는 마치 적극적이고 활발한 외향형 사람들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동료 교사들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혼자만의 작은 섬처럼 느껴졌고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나 같은 처지의 선후배가 주변에 없었기에 열등감의 뿌리는 점점 더 깊게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전의 일과를 마치고 다들 식사를 하러 빠져나가 빈 교무실을 정리하던 점심시간, 한 학생이 문을 열고 다가와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선생님, 늘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부담임인 나를 잊지 않고 챙겨준 그 학생의 짧고 소박한 쪽지는,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따뜻하게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창문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볕뉘처럼, 가볍고 따뜻한 금나비의 날갯짓처럼 내 마음을 밝고 따뜻하게 채웠다.

그 짧은 순간은 이후 나에게 친절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친절은 단지 남에게 무언가를 건네거나 도움을 주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친절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게 하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절에도 이면은 있다. 지나친 친절은 때로 자기희생을 강요하거나 오히려 관계를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친절은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적절한 거리와 균형을 요구한다. 진정한 친절은 상대의 삶에 조용히 스며들어,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도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배려와 소통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쪽지를 받고 나서 밝고 웃음이 많은 그 아이를 보며 감사함을 전하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그 시절 나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없었더라면, 내가 기억하는 그 과거는 정말로 지금의 기억과 똑같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나는 수업 시간에 질문 하나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가 던진 질문이 이미 다들 아는 내용일까 봐 두려웠고, 대답이 틀릴까 봐 지레 겁먹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그런 걱정은 내 안의 열등감이 만들어낸 과장된 두려움일 뿐이었다. 내 옆의 친구들은 나에겐 관심도 없었을 텐데 자의식의 비대였다.

만약 그 시절의 내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방어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먼저 따뜻한 미소를 건네고 작은 친절을 베풀며 지냈다면, 나의 자격지심은 지금보다 훨씬 더 옅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전히 나는 열등감과 우울감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감정이 내게 다가왔을 때,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친절이라는 행위는 결국 정확히 같은 크기와 깊이로 행복과 따뜻함이라는 반작용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나 우연한 감정의 교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학교에서 오지랖을 부리며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힘들어하는 듯한 학생들을 우연히 만나고 위로하며 때로는 다그치는 모든 과정은, 어쩌면 아직도 내 안에 살아있는 열등감을 지닌 십 대의 나 자신에게 전하는, 과거에는 미처 건네지 못했던 진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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