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명언산책] 16일차 당장

by 동네과학쌤
귀한 그릇, 값비싼 양주는 왜 그렇게 아끼는 것일까?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물건을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사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개 제일 좋은 것은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즐기자. 석인성시惜屎惜(아낄 석) (아낄 린) (이룰 성) 屎(똥 시)),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 많은 사람이 평소에는 저렴한 신발에 허름한 옷을 입고, 싸구려 그릇을 사용하면서, 값싼 술만 마신다. 마음속의 좋은 생각도 마찬가 지다. 귀하고 좋은 것, 아름다운 말 너무 아끼지 말고 지금 쓰자! 당장 표현하자!
승자는 달리는 순간에 이미 행복하다. 그러나 패자의 행복은 경주가 끝나봐야 결정된다. -탈무드


2년 전 겨울, 나는 폴라로이드 필름 팩을 한 번에 많이 샀다. 즉석에서 나오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물건이었다. 한 장당 가격이 꽤 나갔다. 나는 특별한 순간을 위해 필름들을 소중히 보관했다. 그냥 지나가는 일상이나 평범한 풍경은 아깝지 않나? 언젠가 의미 있는 날, 의미 있는 사람들과 쓰겠다고 다짐했다.

몇 달이 흘렀다. 카메라는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었고, 필름들은 냉장고에서 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필름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니 글쎄, 이미 지나가 있거나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아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제대로 찍어보지 못한 채 그 귀한 필름들을 고이 모셔두다가 버리게 됐다.(물론 유통기한이 지나도 찍을 순 있어 꾸역꾸역 찍었다.) 완벽한 순간만 기다리다가 모든 순간을 다 놓쳐버린 셈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상황을 '석린성시'라고 표현했다.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는 뜻이다.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너무 소중히 여기다 보면 정작 그것의 가치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새 옷을 사놓고 특별한 날만 기다리다가 유행이 지나버리고, 비싼 술을 모셔두다가 맛이 변해버리고, 좋은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일들 말이다.


공자도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아끼는 마음 자체는 좋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다. 절약할 때와 쓸 때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를 붙잡으라는 뜻인데, 이게 꼭 무작정 즐기자는 건 아니다. 막연한 미래에만 기대를 걸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라는 얘기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처럼, 승자는 달리는 순간에 이미 행복하지만 패자의 행복은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승자가 아닐까.


사실 우리는 모두 이런 경험이 있다. 유품정리사들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일 좋은 건 써보지도 못하고 떠난다고 한다. 그러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좋은 향수 뿌려보고, 예쁜 찻잔으로 차도 마시고, 평소 아껴뒀던 것들 꺼내 써보자. 가고 싶었던 곳에도 가보고, 하고 싶었던 말도 해보자.


물론 모든 걸 당장 써버리자는 건 아니다. 다만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지금'을 너무 인색하게 굴지는 말자는 거다. 특별한 날이 저절로 오는 건 아니니까. 평범한 화요일도, 별일 없는 주말도 우리가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명한 사람들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되 지나치지 말 것, 미래를 준비하되 현재를 희생하지 말 것, 좋은 것을 아끼되 그 가치를 누릴 줄 알 것.


오늘 저녁엔 평소 아껴뒀던 좋은 차를 우려 볼 생각이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다시 꺼내볼까 한다. 이번엔 의미 있는 날을 기다리지 않겠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평범한 일상들이 사실은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순간들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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