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석

by 동네과학쌤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나는 바닷물을 마신다.

갈증은 지식보다 강했고, 그리움은 이성보다 완고했다.

그렇게 나는 사랑이란 웅덩이에 그리움을 섞었다.

진한 커피에 물을 붓듯, 너무 뜨거운 것에 식힘을 더하듯, 지나간 사랑에 그리움을 조금씩 떨어뜨렸다.

그리움을 한 방울 더할 때마다 사랑은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부풀어 올랐다.

마른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잠들어 있던 씨앗이 이슬을 만나 싹을 틔우듯,

사랑은 그리움을 양분 삼아 다시 살아났다.

그렇게 부풀어 오른 사랑을 안고 시간이 흐른다.

함께 웃던 농담이, 다투던 날의 목소리가, 옷에 스며 있던 향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사소한 기억들이 하나둘 증발했고, 나는 그것을 망각이라 불렀다.

드디어 사랑이 옅어지고 있다고 믿으며, 안도했다.

하지만 감정의 바닥을 보았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물기 어린 기억들이 모두 증발한 자리에는,

이전보다 훨씬 작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하고 무거운 사랑의 결정체만이 남아 있었다.

부피는 줄었지만 농도는 독처럼 짙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랑은 기화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먹으며 제 본모습으로 응축될 뿐이었다.

내가 했던 모든 희석의 시도는 그 응축을 지연시킬 뿐,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희석을 시도하지 않는다.

증발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짙으면 짙은 대로, 묽으면 묽은 대로, 이 사랑의 농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가끔, 아주 가끔, 나는 이 작은 결정체를 혀끝에 올린다.

독이 되지 않을 만큼만,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그 맛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는 것을,

뜨거우면서도 서늘하다는 것을,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한다.

어떤 것들은 희석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

어느 순간 나는 또다시 그리움을 붓고 있다.

마치 오래된 실험을 계속하듯, 사랑이라는 물질의 변화를 끝내 멈추지 못한 연구자처럼.



9월 포레스트 웨일 합작 프로젝트에 '사랑'을 주제어로 글을 작성했으나, 정신이 없어서 제출하지 못해 아쉬웠던 글. 다행히 10월 주제어가 '그리움'이라 10월 작으로 제출.

매거진의 이전글영원의 형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