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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상민 Dec 24. 2018

4. 영화의 가치, 개인과 구조의 차원

토론을 통해 살펴보는 영화 판단기준과 예술의 특성

'영화'로 시작한 가벼운 토론


'영화'를 주제로 4명의 대학생과 함께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영화 토론동아리 부회장을 잠시 맡은 제가 감히 사회자를 맡고, 4분의 패널분들은 공연계부터 인문, 디자인, 공학도까지 모두 각각 다양한 전공에 몸담고 있는 제 친구들입니다. 제 친구들이지만 다들 영화를 너무 좋아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카페에 모여 앉아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토론의 시작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적 검토부터 시작하여, 괜찮은 영화를 가르는 자신만의 기준, 그리고 실제 같이 본 영화를 대상으로 해당 영화가 평작인지, 졸작인지 첨예하게 토론하는 과정까지 이어졌습니다.



영화가 지닌 가치는?


승범 : 영화는 영화 자체의 가치도 있으나, 주목하고자 하는 건 영화의 외부적 가치다. 영화를 관람객에게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제공하여 관람객 스스로가 스스로의 흥미를 알 수 있도록 한다. 또, 영화는 그 당시의 기억을 포착하는 메모리즘의 역할을 수행한다. 가령 여자 친구와 A라는 영화를 보았다면, A라는 영화를 기억할 때마다 그 당시의 추억이 생각나게 된다.


선우 : 승범이의 말처럼 영화는 간접경험을 제공하기에 관객들에게 대리만족감을 제공한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관객이 스크린 앞에 앉아서 다양한 경험을 시각적, 청각적, 심지어 최근에는 촉각적으로도 수행하고 있다. 영화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예술활동이기에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본다.


윤진 : 영화는 내게 삶의 활력소다. 영화는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는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영화의 역사는 비록 짧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여가활동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영진 : 앞에서 열거된 영화가 지닌 가치에는 공감을 한다. 그러나 현재 영화는 적폐다. 영화는 비슷하게 정형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지도 개봉하는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정치적 영향력을 받는 영화산업에는 현재 많은 문제가 내재되어있다.



평작과 졸작을 나누는 기준은?


승범 : 재미있으면 평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한 수치를 보자면 관객수를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많이 본 영화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선우 : 영화를 보고 나서 돈이 아까운지, 아깝지 않은지가 평작의 기준이 된다. 일부 영화의 경우, 시기의 특수성을 노려 흥행을 이끌어내려는 수작을 보인다. 추석 같은 명절 기간을 노려 평시보다 더 많은 관객이 관람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윤진 : 더 보고 싶고 나중에 생각나는 영화가 평작이다. 마음에 들었던 영화는 다시 봐도 또 새롭고 즐겁다.


영진 : 결말에서 여운이 남는 영화가 평작이다. 또 다른 나만의 기준도 있는데, 3번 이상 천장을 쳐다보면 평작이 아니다. 천장을 쳐다본다는 건 영화가 지루하거나 별로일 때이기 때문이다. 기획자 입장에서는 손익분기점을 기준으로 평작을 가를 수도 있다.



주관적, 임의적인 영화 판단기준


이번 토론을 통해 영화에 대한 패널의 시각과 평작을 나누는 각자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 글에서의 논의 범위를 좁히기 위해 이 부분만 실었다.

'평작'의 개념을 어떻게 여기는지에 따라 그 기준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평작'에 대한 개념 인식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패널들의 기준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모든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지 않고 임의적이다. 모호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러한 기준의 등장은 어떤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1. 개인 역량 중시 차원


영화라는 예술을 바라보는 주관적, 임의적인 기준이 나타난 이유는 두 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예술을 관람하는 개인의 가치관에 초점을 맞춰서 볼 수 있다. 예술 관람은 관람하는 사람마다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과정이다. 관람객의 경험, 생각, 성격 등이 예술 관람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영화를 같은 장소에서 보더라도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한 바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개인들은 영화를 보며 각자만의 여운과 각성을 느낀다. 더 나아가선 그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한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영화 내부의 가치에 더욱 주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보더라도 그 속에서 또 다른 감회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 오롯이 개인의 가치관 덕이다. 개인의 가치관이 하나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듯, 평작에 대한 기준도 그렇다. 개인마다 복잡하게 얽혀 형성되어 있는 기준을 막상 말로 풀어내는 과정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 명확하지 않게 기준이 표현되는 이유는 개인의 기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개인의 가치관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평작의 기준은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임의적인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2. 산업구조의 영향력 중시 차원


반대로 개인의 기준이 유효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영화산업이 제공하는 선택지에 끌려다닌다고 볼 수도 있다. 개인의 기준은 임의적이기에 실제로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영화관에서는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몇몇 영화들이 대부분의 관을 차지하고 있다. 관객들은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여 예매한다. 실제로는 이미 주어진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기에 예매 과정부터 관객은 영화산업에게 통제당한다, 이렇게 감상한 영화는 대부분 흥행할 만한 요소를 포함한 정형화된 영화다. 흥행을 위해 유사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시각적 즐거움과 시간을 보낼 좌석만 있다면 영화 내부적 가치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영화는 영화 자체의 가치보단 외부적으로 파생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즐겁게 그 시간을 보냈으면 충분하다고 관객은 여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영화의 예술적 가치는 훼손된다.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개인에게 각성과 생각할 여지를 제공하고 비판적인 시각과 기회를 제공하는 비판적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소결 : 복잡한 예술 어렴풋이 이해하기


이상으로 토론에서 나온 주관적 예술 판단기준을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살펴보았다. 이번 토론과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예술이 지닌 특수성에 대해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다양하고 개인에게 다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예술을 둘러싼 예술산업의 경우 예술을 통제하여 그 다양성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 복잡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예술과 관련된 구조부터 예술을 관람하는 개인까지 전 부분을 두루 살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이번 토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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