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초, <성 삼위일체>
이탈리아 화가에게서 찾은 프랑스의 영향
마사초 <성 삼위일체> (1425-1428, 습식 프레스코화> 십자가에 못 막힌 사람이 그림 한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보신 듯한 느낌이 들죠.
다만 밑에는 뭔가 꺼림칙한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관에 해골이 번듯하게 누워있네요.
글귀도 가지런히 쓰여있습니다.
어쩐지 으스스하면서도
십자가에 매달린 윗부분과는 느낌이 확 다릅니다.
이 작품은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입니다.
처음으로 원근법을 그림에 동원했기에
미술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원근법 같은 기술적인 측면도 좋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저에겐 다른 측면이
좀 더 흥미로워 보이는데요,
같이 살펴볼까요?
시대적 배경: 미술계 인본주의의 문을 열다
중세시대는 예술의 암흑시대였습니다.
신은 절대적이었고 인간의 가치는 무시당했습니다.
때문에 예술은 많은 제한과 탄압을 받았습니다.
르네상스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돌아오는
인본주의적 혁명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시기적으로 미술계에서 르네상스 혁명을 이끈 시초 격 작품이라 볼 수 있겠네요.
독단의 잠에서 깨어난 화가들의 실존적 자각과 반성의 결과는 이제까지 보여 온 평면적이고 상징적인 중세 회화들과는 다르다. - P63
* 독단의 잠: 기독교와 신학이 우세한 중세, 신 중심
* 실존적 자각과 반성의 결과: 르네상스, 인간 중심
1. 원근법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미술에 도입한 점
2. 중세 권력의 상징인 라틴어 대신
이탈리아 고어를 그림에 사용한 점(역사적 차별화)
3. 인물이 정면을 응시하게 한 점(입체화)
이상의 세 가지 요인들로 우리는 이 작품이 가진
르네상스적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신 중심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변화를 추구했죠.
알프스 이북 지방인 프랑스의 영향
작품을 그린 화가, 마사초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프랑스의 영향이 많은데요.
첫 번째로 트랑지(transi)입니다.
트랑지는 해골이나 부패하고 있는 시체 등을 그리는 표현방식으로, 14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행한 방식입니다.
그림 하단부에 있는 해골은 트랑지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매우 유사하거든요!
두 번째는 그나덴슈툴(Gnadenstuhl)입니다.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성부는 십자가 상의 성자를 안고 있고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나타나 있는 도식을 말합니다.
그림을 다시 볼까요?
의자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십자가에 매달린 성자를 안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흰 비둘기도 보이네요.
그나덴슈툴은 알프스 이북지방의 방식입니다.
트랑지, 그나덴슈툴은 알프스 이북지방 방식이죠.
이탈리아는 참고로 알프스 남쪽 지방입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마사초는 알프스 이북 지방인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나 봅니다.
해골의 의미: 메멘토 모리, 죽음을 보다
그림 속 해골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미술사에서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트랑지에서 표현방식을 차용했다고 보더라도
마사초는 어떤 의도로 아래에 해골을 그렸을까요?
죽은 아담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성담을 암시한다, 죽음 자체를 표현한다 등 많은 해석이 있습니다.
저는 마사초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바탕으로 해골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프랑스인들에게 죽음은 늘 곁에 있었습니다.
레장발리드, 판테온, 카타콤베 등 여러 묘지가 프랑스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도 했지요.
프랑스인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Mori)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면서 죽음을 잊지 않고 직시하는 마음입니다.
그만큼 죽음을 피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죠.
관에 쓰인 글귀는 지극히 메멘토 모리적입니다.
"나도 한 때 너희와 같은 것이었고 너희도 나중에 나와 같아질 것이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해골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경고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더욱 발칙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삼위일체 밑에 해골과 관을 배치했다는 점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 일치하는 것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도 동일시하여
인간이 지니는 위치를 신까지 끌어올리려는
마사초의 르네상스적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 참고 자료
- 미술 철학사 1(이광래, 미메시스, 2016)
-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의 도상적 의미
(박성국, 미술사학 24호, pp.85-117,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