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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상민 Mar 18. 2019

1. 나서는 아이, 꼴보기 싫은 이유는?

내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

나서는 아이, 꼴보기 싫은 이유는?


오늘의 질문은 교실 속에서 찾았다.

항상 앞에서 또랑또랑 수업에 집중하며

교사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던 그 아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고 대답하며

아는 것도 많으면서

쉬는시간까지 배움의 열정을 놓치 않았던 그 친구.

나는 그 친구가 어쩐지 꼴도 보기 싫었다.




그렇다고 그 친구를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 친구와는 별 문제가 없다.

그저 나서는 친구가 짜증났을 뿐이다.

왜 난 그 친구를 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까?

오늘은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1)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시기와 질투


첫번째로 떠올린 이유는 친구에 대한 열등감이다.

뛰어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따른다.

나와 비슷한 줄 알았던 사람이

나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패배감이 들 수 있다.

타인이 자신보다 뛰어남을 인정하기는 쉽지않다.

능력의 차이가 적을수록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기에 더욱 반감이 드는 것은 아닐까?

비슷한 줄 알았던 같은 학급 친구가

선생님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지식,

누구보다 재빠르게 손들고 참여하는 용기,

나는 그 친구의 이런 모습들이 샘났을까?



2) 지식을 뽐내려는 허영심, 그리고 거부감


교실 속 학생이나 교사나 완벽하지는 않다.

다들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부족하기에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지 않는가?


그 친구는 나름대로 최선의 대답을 내놓으려 한다.

하지만 많이 안다는 건 그만큼 위험할 수 있다.

지식으로 인한 자만심과 허영심에 빠져

자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있는지

자랑하고 싶은 충동에 빠질 수 있다.

지적허영심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뽐내려는 그 친구의 말에서 거부감을 느껴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말에 의미없는 대명사와 형용사가 난무하고

여유롭다못해 거들먹거리는 듯한 말투,

여기서 그 친구를 향한 거부감을 느끼게 된 걸까?



3) 수동적 교육의 잔재


세 번째 이유는 문화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교육 현장은 그동안 수동적이었다.

역사적으로 교사가 일방향적으로 학생에게

지식을 주입시키고 학생은 받아들이는 형태였다.

신성시되던 교권에 학생은 감히 침범하지 못했고,

질문과도 같은 능동적 행위는 금기시되었다.


현재 교육의 현장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졌고

교사가 줄 수 있는 지식의 범위는 축소되었다.

더 이상 일방향적 교육이 아닌,

교사와 학생, 혹은 학생 사이에서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쌍방향적 교육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과 교육 현장의 변화와는 달리, 문화적인 요소는 빠르게 변화하지 못한다.

일방향적 교육에서 통용되었던 문화

사회 속 개인에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유교문화와 일제 시대 교육 탄압으로 인해

강화된 수동적 교육의 문화는

개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유효하게 작동한다.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마구 대답하는 친구에게

이유 모를 거부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4) 원활한 수업의 방해


친구의 대답은 누구보다 빠르고 많다.

다른 사람이 미처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도 전,

대답하기 위해 손을 들기도 전,

교사 앞에 앉은 그 친구는 어김없이 손을 든다.

수업 중 교사의 질문에는 항상 그 친구가 대답한다.


독점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다른 학생들은 의욕을 잃는다. 그 친구가 대답을 전담한다.

이렇게되면 수업은 원활하지 못할 수 있다.

다른 학생들의 집중은 떨어지고

학생들의 생각을 유도하려는 교사의 의도대로

수업이 진행되기 어렵다.

둘 만의 수업은 교사 입장에서도, 학생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과도한 참여로 수업을 방해하는 그 친구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 건 아닐까?



소결 : 내 감정을 대하는 방법


지금까지 4가지 이유를 찾아보았다.

나는 왜 그 친구에게 부정적 감정을 느꼈을까?

4가지 이유 전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다른 요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고민으로 나온 결론이 있다면,

확실히 그 친구의 잘못은 아니다.

부정적 감정을 느낄 만 하다고 정당화될 순 없다.


내 감정을 똑바로 직시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은 자신을 솔직하게 해주고

부정적 감정을 털어버릴 수 있게 했다.

일종의 자아성찰 과정이었다.

독자 여러분도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면

자신의 감정을 자꾸자꾸 돌아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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