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의 분노는 인상 깊지 않다.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비정상회담에서 등장해 왕성한 활동으로
똑똑한 이미지를 갖춘 외국인, 타일러 라쉬.
지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끄는 타일러가
환경문제, 기후위기를 주제로 책을 써냈다.
베스트셀러까지 될 정도로 많이 읽혔기에
책 내용이 기대가 되었으나,
다 읽고 나서는 완전히 다르게 느꼈다.
아, 타일러의 유명세가 상당하구나!
분노한 타일러를 누가 막을쏘냐
책을 읽다 보면 문체에서 타일러가 느껴진다.
초반부에는 잠잠하다가
책의 초중반부를 넘으면서
기후 문제를 향한 강한 분노와 답답함이 물씬 느껴진다.
후반부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 버몬트를 이야기하면서는
강했던 분노가 사그라지고 다시 침착해진다.
실제로 3장 서두에서 '해결책은 분노에 있다'라고 말한다.
국가, 기업 등 각종 주체들의 이기적인 판단의 결과로
환경이 파괴되어 타일러는 분노했다.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마땅한 미래의 권리를
무단으로 훼손당했기 때문에
분노가 이해가 가고, 또 나도 분노해야 한다.
참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는다.
분노해야 함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같이 분노에 공감하기엔 문장이 어설프다.
정말 필요한 근거가 없다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설명하는 사례가 맞지 않는다.
시리아는 2007~2010년에 사상 가장 심각한 가뭄을 경험했다. (중략) 식량을 구할 수 없는 농민들이 대거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라면서 온갖 갈등이 촉발되었고, 내전으로 이어지면서 사상 최대 난민이 발생했다. - 책 내용 일부 발췌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가
시리아 난민 문제 속 배경이 되었음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가뭄이라는 거대한 재난이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공감이 되지만,
기후 변화가 더 심해지고 있음을 공감하긴 어렵다.
책 83-85페이지에는 늑대와 사슴을 다룬 비유를 통해
자기의 번영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 불러오는
비참한 결과를 이야기한다.
해당 예시도 타일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지 못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설정하고
그 뒤에 사례, 근거를 맞추어 붙였지 않을까 싶다.
타일러의 주장들은 설득력 있는 근거 대신
분노에 가득한 호소만이 느껴진다.
근거 없는 호소는 생각이 다른 사람한테는 닿질 않는다.
평소 기후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면
타일러의 근거가 취약하더라도 넘어가겠지만
반대 혹은 중립적 입장의 사람들은 반감을 가지기 쉽다.
버몬트가 그리운 타일러
마지막 장에서는 책 분위기가 확 다르다.
버몬트에서 있었던 어릴 적 이야기를 통해
환경 문제를 이야기한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고민할 만한 주제가 담겨 있다.
다만 흐름 없이 환경 문제 관련 이야기라고 해서
세부적인 주제가 다른 예시가 줄줄 나오니
정돈되지 않고 뭘 읽고 있는지 모를 느낌이 들었다.
버몬트에서 닭을 잡는 예시를 통해
고기를 잡는 과정과 고기를 소비하는 과정이 유리되어 있는
현대 사회의 소외 현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충분히 앞쪽 파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할 때
예시를 넣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버몬트 이야기라고 해서 뒤쪽에 몰아넣으니
책 구성이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다.
책의 정체성을 담은 FSC 인증 종이
이 책의 의미는 종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환경 콩기름 잉크와 재생지로 만들었다.
환경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자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친환경을 생각했다는 점은 인상 깊다.
환경을 위한 출판 과정 속 타일러의 노력과 고집은
타일러의 책에 정체성을 확립하고
환경 분야 도서로서의 색다른 의미를 갖게 한다.
타일러는 생활 속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환경 문제 개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행동하고 있다.
FSC 인증 종이를 활용한 인쇄는
타일러의 다양한 노력 중 하나다.
환경을 향한 타일러의 고집이 이 책만의 강점이다.
열정 넘치는 타일러의 분노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