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조림 먹는 방식까지 존중해라.
<기록의 쓸모>를 읽고
표지에서부터 적고 있다. 슥삭슥삭.
기록은 참 신비하고 유용하다.
인간의 기억력을 보완해주는 기록은
찰나의 생각까지도 전부 담을 수 있기에
나 대신 내 생각을 기억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곳저곳에서 마구 적는다.
블로그에도 적고, 브런치에도 적고,
업무시간에 수첩에도 적고,
심지어 핸드폰이나 컴퓨터로도 적는다.
쓸 곳이 부족해서 급한 사람은 손등에도 적는다.
적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마구 적는다.
처음 적기 시작한 건 기록이 쓸모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적는 게 좋았다.
어릴 적 마음에 들었던 괴도 루팡의 소설책을
열심히 따라 적었던 기억이 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책이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노트 하나에 학교 쉬는 시간마다 열심히 책을 받아 적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부터 적는 걸 좋아했다.
뾰족한 연필로 종이에 적을 때 필기감이 좋았다.
쓰는 필기구에 따라서 글씨가 천차만별로 적혔다.
적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즐겁게 적었다.
이번 책은 적는 걸 좋아하는 나라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초반 1/3 정도를 읽었을 때 즈음
극도의 피곤함을 느꼈다.
누군가의 고민과 영감이 담긴 메모가 가득해서
매 페이지마다 드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에는 부담 없이 휙휙 넘기면서 읽었다.
아쉬운 점은 글씨였다.
이상하게도 이 책 문장 중 많은 수의 글씨가
잘못 인쇄가 된 건지 음영처리가 된 글씨처럼 흐릿했다.
프롤로그도 그랬고, 중간중간 많은 페이지가 그랬다.
읽는 도중 눈이 아픈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인쇄 문제는 기록을 즐기는 데에 큰 장애가 되었다.
존중은 태도로 드러나야 한다
여러 메모를 보며 가장 인상을 받은 내용은 존중이다.
사람이 살면서 타인을 존중하라는 말은 익히 들어오지만,
실제로 성장하고 배우면서 항상 다리를 잡는 게 존중이다.
모든 피드백의 목적은 '더 나은 결과'다. 피드백이 진짜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 P59
언제부터인가 나의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기 별로예요? 왜 안 좋아요? 그럴 리가 없는데." - P123
내가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타인을 존중하기 어려워진다.
피드백이 어려운 이유도, 남에게 내 취향을 강요하는 이유도 동일한 이유에서 시작한다.
내 생각과 취향이 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존중의 시작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아침형 인간은 자기계발서를 쓰고 저녁형 인간은 소설을 쓴다. 저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거라고. - P119
누구나 자신만의 성향이 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모두가 존중받아야 함에도
자신과 생각이 다르거나 고민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남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하게 강요하곤 했었다.
예전 친구가 고등어조림을 먹을 때
밥과 함께 비벼먹지 않고
밥 따로 고등어조림 따로 먹었었다.
그 모습을 보곤,
평소 밥과 고등어조림을 같이 비벼먹던 나는
"왜 그렇게 먹지? 비벼먹어야 맛있는데."를 연발하다가
친구랑 대판 다툰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다.
친구는 그렇게 먹는 게 더 맛있었던 것인데!
그래도 고등어 조림은 비벼먹어야 맛있지 않나요? (심규섭/고등어조림/디지털회화/2019) 존중하는 자세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