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글짓기

300일의 집을 짓다. 글을 짓다. 지어 [지어] 지으니 [지으니]

by 마음

그 이틀


-바닥을 짓다.

바닥에 장선을 깔기 시작했다. 바닥을 만드는 일은 수평을 맞추는 작업이다. 수평계를 수없이 대고 깔고 뜯고 깔고를 반복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바닥이 제일 튼튼해야 하므로 장선 간격을 촘촘하게 맞물리고 곳곳에 철물을 고정해 단단함을 더했다. 최대한 힘이 분산되도록 곳곳에 구조재를 보충해 주었다. 구조재가 굉장히 무거워서 둘이서 끝과 끝을 잡고 표시해 놓은 곳에 맞춰 구조재를 놓았다. 바닥 만드는 일은 무거운 것을 드는 것과의 싸움이다. 작업의 속도는 느렸지만 하나하나 모양과 형태가 만들어질 때마다 희열이 느껴졌다.

촘촘히 깔린 장선 위로 합판을 깔았다. 바닥합판재는 일반 벽체 합판보다 두께가 훨씬 두껍다. 들기도 무겁지만 자르는데도 힘이 많이 들어간다. 손재주가 워낙 좋은 신랑은 뭘 하나 잘라도 반듯하게 잘 자른다. 자로 재고 수평을 잡고 자르기를 수십 번, 얼추 바닥의 모양이 갖춰졌다. 장선의 중간에 합판이 맞물리도록 깔아준다. 뚫린 공간으로 못질을 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바닥 장선이 지나가는 곳을 따라 실을 띄워 표시를 해주고 목공본드로 이용해 한번 붙이고 총으로 못을 쏜다. 밑으로 못이 튀어나와 있는지 보기 위해 밑에 공간에 들어가서 손을 더듬어서 잘 박혔는지 확인했다. 바닥이 깔리니 아이가 좋아서 뛰어다녔다. 그 평평하고 안정된 바닥 위에서 아이가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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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까지 내려갔던 시절-


추운 겨울이 시작될 무렵 본격적으로 집 짓기가 시작되어서 아이들도 함께 땅으로 따라왔다.

시내에 있는 임시거처에서 집을 짓는 땅까지는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땅과 집을 자주 오고 갈 수 없어서

동이 틀 무렵 일어나 그날에 먹을 음식들과 아이들 옷과 장난감, 책들을 준비해 서 네 가족이 모두 낡은 트럭을 타고 땅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인 것 같다.


어릴 적 소풍날이 되면 새벽에 고소한 밥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그건 단순히 밥 짓는 냄새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새벽에 내 곁에 있어준다는 신호였다. 밥냄새가 주는 달큼함과 큼큼함에 눈을 감고도 주방의 엄마를 그려볼 수가 있었다. 눈을 뜨면 산처럼 쌓인 기름진 김밥의 풍요로움 뒤로 엄마의 그림자가 주방 불빛과 함께 어른어른 내 눈 속에 녹아들 때면 어린 마음에도 "행복"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챙길 때면 우리 아이들은 그때의 나처럼 눈을 감고도 엄마를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새벽에 부지런히 그날의 먹을 것을 싸고 장난감을 챙기고 히터와 두꺼운 옷을 챙기는 엄마를. 짐을 모두 실은 트럭을 따뜻하게 덥히고 잠든 아이를 하나씩 안아서 차에 태우던 아빠를.

두 아이모두 잠에서 깼으면서 깨지 않은 척 그 좁은 트럭공간에서도 몸을 맞대고 키득키득 웃으며 스르르 다시 잠이 들던 그 시절을.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가족이 주는 온기로 따뜻했던 겨울을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짓는 곳까지 갈 수 있었던 건 모두 "바닥" 덕분이었다.


바닥이 없던 시간에는 아이들이 편히 앉을 만한 곳이 없었고 가족이 밥을 먹을 공간도 없었다. 그때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편편한 바닥뿐이었다. 넓고 편편한 바닥만 있으면 모두 편히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다닐 수도 누워있을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공간이 생겨나고 그 공간이 주는 소중함에 새벽에 일어나 밥을 챙길 수가 있었다. 바닥부터 시작하자 라는 말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집을 지으면서 알게 된 사실, 바닥을 짓는 과정까지 무수한 노력과 시련이 있다는 것이다.

바닥이 생기는 순간은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편편하고 안정적인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그 바닥은 어쩌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저 밑바닥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의 바닥. 살면서 바닥까지 갔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그건 좌절의 시간이 아닌 위로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느꼈던 그 바닥에는 엄마의 김밥이 윤기 나게 쌓여 있고, 아빠의 택시가 분주히 달리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바닥까지 갔다고 느낄 때 나는 그날의 기억이 나길 바라본다. 추운 바닥이지만 편편하고 안전했던 그곳. 새벽부터 준비한 밥과 반찬과 국이 그 바닥에 있을 것이고, 장난감 자동차가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것이고, 형과 같이 뛰어도 무너지지 않았던 그곳, 이불을 덮고 누워있을 수 있었던 그곳, 엄마 아빠의 못 박는 소리에 스르르 눈이 감겼던 그곳, 춥고 험난한 산속에었지만 그곳에는 바닥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고,



- 1층 내벽, 2층 장선, 계단까지 짓다


1층 바닥이 만들어졌으면 그다음은 벽을 세울 차례였다. 1층바닥에 설계도의 벽의 길이만큼 나무로 만들고 창문공간들을 계산해서 그 공간은 위에 헤대를 만들고 창문을 치수만큼 빼둔다. 그리고 벽 합판을 덮어 재단을 하고 꼼꼼히 못질을 한다. 이렇게 사면을 만들어 어른 네 명이서 세워 올렸다. 세워 올리고 나서가 중요한데 그때는 수평 맞추는 게 아주 중요하다. 수평자로 철저히 맞추어 못질을 하고 벽과 벽사이를 잘 조합하여 움직이지 않게 서로 잡아가면서 못질을 했다. 이렇게 벽을 만드는데 일주일정도가 소요됐다.

가운데 통로를 두어 집의 중심 힘을 잡아주는 역할을 부여했다. 통로는 또한 내부의 공간을 나누는데 아주 좋은 기능을 하는데, 양옆으로 거실과 다이닝룸, 1층방과 화장실 2층계단 주방등 모든 공간이 통할 수 있는 동선이 되어준다. 한마디로 통로를 통하면 모든 게 열린 공간이 되는 것이다.

모든 문에는 위에 헤더를 만들었고, 나무와 나무를 덧대 조금 더 튼튼히 만들려고 노력했다.
20130128_162331.jpg 내벽을 세울 때도 수평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했지만 하면서도 몇 번을 뜯고 다시 하고를 반복해야만 했다
20130130_150514.jpg 벽이 세워지니 바람도 막고 아이들이 더욱 놀기 좋아졌다



이제 이층 장선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2층 작업을 하려니 사람이 직접 올라가야 했다. 장선이 깔리기 전이라 아슬아슬하게 실을 씌워 수평을 미리 맞춰주고 장선을 깔 때는 하나로 다 못 깔기 때문에 두 개가 중간에서 맞물려야 하고 사이사이 보강을 철저히 해줘야 튼튼한 바닥이 된다. 그래서 중간벽을 더욱더 신경 써서 매뉴얼 대로 보강에 신중을 기했다

20130129_105416.jpg 언제나 수평과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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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0_122227.jpg 언제나 매뉴얼 대로 하려고 꼼꼼히 최선을 다했다

다음이, 우리 집에서 가장 어려웠던 계단작업이었다. 이층 장선을 깔고 보강까지 철저히 마무리 하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계단, 계단은 그야말로 수학과의 싸움이었다. 우린 아이들 때문에 기울기가 심하거나 일자로 된 계단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안정상 위험하지 않는 기울기였고 다음은 튼튼함이었다.

일층에서 다섯 칸, 그다음 도는 계단 2개 이층으로 가는 계단 다섯 칸, 이런 설계를 기반으로 도는 계단은 각도에 맞게 만든 후 설치를 해야 했다. 계단이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 저속에는 세 개의 구조물이 들어있다. 정확히 계산 후 재단을 해야지만 세 개를 설치하고 합판을 덮었을 때 완전하게 뚜껑이 닫힐 수가 있다. 계단만 만드는데 삼일이 소요됐다. 만들고 뜯고 다시 만들고 계산하기를 반복했다.



20130202_151144.jpg 계단은 수학과의 싸움이다.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새삼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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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론 시간이 해결해 준다.-


계단이 3일이나 걸리다니, 하루의 시간도 허투루 쓸 수 없을 때였다. 돈은 하루가 갈수록 떨어져 가고 날은 이미 겨울의 한복판으로 들어서 칼날 같은 바람이 불고 있었고, 산속의 날씨를 감당하기에 손가락도 발가락도 동상에 시달려야 했다. 해는 짧아서 4시만 되면 어두워지니 하루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그 시간 동안 해내야 하는 일들 투성인데 계단에서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난관에 봉착했던 것이다.


"대충 넘어가자"

이틀째가 되고도 만들고 뜯기를 벌써 수없이 반복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말 끝에는 대충 하자가 버릇처럼 쏟아지고 그것이 짜증으로 또 분노로 또 절망감으로 바뀌면서 상대방과의 사이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욕구에서 하나의 목표를 이루어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다 타협도 양보도 없는 팽팽한 대립 속에서 문제적인 현상을 해결해야만 할 때 그때 필요한 건 대화도 의논도 설명도 아닌 그저 시간이었다.


가족으로 무장한 관계 속에서는 아주 쉽게 감정의 서사가 동반된 무조건적인 항복을 원한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걸 하지 않으면 (이를테면 대충 하라는데 대충 하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 또한 문제의 원인을 납득시키기보다는 자신을 믿지 못하고 다그치는 것에 대한 서운함의 감정만을 토로한다. 계단은 말 그대로 상대방 애정 테스트의 척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해결의 과정에서 감정이 개입되면 그건 또다시 상처로 연결이 될 수 있다. 감정이 문제보다 앞서게 되면 단어의 표현이 격해지고 선택에 대한 후회와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생겨난다. 문제와는 상관없는 애정의 척도로 자신을 평가하게 되고 실패했다는 불안감이 밀려와 서로의 말과 행동을 외면하려 한다.


그랬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그랬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뒤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답답한 마음을 달랬고 나는 컨테이너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계단을 만들고 뜯고 다시 만들면서 서로에게 지쳐갈 때 해결책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싸우고 서로 안 보다가도 해가 뜨면 다시 망치와 못을 들고, 각도기를 들고 서로 잡아 주고 놓아주면서 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어느 부부는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술잔을 들 때는 습관처럼 서로 짠을 한다. 시간이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결해 줄 수 있어서 그 흐름에 익숙해지면 누구의 사과가 그렇게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생각이 옳은지 이를 악물고 가릴 필요는 없다. 시간의 자연스러움. 그건 계단의 각도가 만들어 주는 술잔과도 같은 것이었다.




-2층 박공벽과 셰드벽, 도머창을 짓다


이제 이층의 작업이 시작된다. 이층 바닥의 최대 난관은 엄청나게 무거운 바닥 합판을 올리는 것이었다. 우선 밑에 받침대를 만들고 한판을 아래서 들어주면 위에서 한 명이 끌어서 이층에 올려놓는다. 무겁고 큰 합판을 올리는 건 그래도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2층의 바닥은 곧 1층의 지붕이 되니 추운 겨울바람을 좀 더 막아줄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1층과 마찬가지로 장선사이에 합판을 맞물리게 자르고 연결하면서 못질을 했고 못이 허공에 박힐 수도 있기에 1층을 오가며 못이 꼼꼼하게 박혔는지 확인했다.



20130202_151950.jpg?type=w2 2층 바닥이 깔릴 때 비로소 주변의 풍경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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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의 벽은 일층과는 다르게 반듯한 사각이 아니라 세모모양이었다. 정확히 이층이 다락인데, 지붕 기울기를 45도로 높게 잡아 그 안에 방을 내고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일단 세모모양의 박공벽을 만드는 건 처음부터 계산과의 싸움이다. 계산이 들어가는 일에는 언제나 그렇듯 뜯고 붙이고 뜯고 하나하나 각도에 맞게 자르고 붙이고 하느냐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린다. 어떤 날은 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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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_151952.jpg?type=w2 각도에 맞춰 벽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중간 계단 있는 곳에는 셰드 창이라고 공간을 따로 내는 벽을 만들 예정이라 그 부분을 비워두고 지붕을 걸기로 했다. 지붕을 건다는 게 나도 이해가 잘 안 갔는데, 만들어서 세우는 게 아니라, 기울기에 따라 하나하나 잘라서 일층 벽체 부분을 걸고 중간 지지대를 중심으로 양옆에서 정확한 힘의 합으로 지탱시켜 주고 철물과 보강재로 고정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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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4_165337.jpg?type=w2 하나하나 각도를 조절하고
20130214_163812.jpg?type=w2 중간 지지대를 중심으로 양옆에서 정확한 합으로 단단한 철불과 보강으로 고정시켜 준다

셰드 부분은 벽체를 만들어서 세워 올렸다. 계단에서 사람이 올라오는 곳이라 사람의 키만큼 뚫어야 했다. 벽체 부분에서 서까래가 걸려서 위에 지붕의 지지대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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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속의 작은 지붕 도머창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앞쪽으로 두 개를 낸 도머창도 각기 소규모의 지붕을 독립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작은 지붕을 만다는 게 더 만만치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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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


어느덧 2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것 같았던 겨울의 칼 같은 바람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드러움을 안기며 몰아쳤다. 지붕이 올라가고 제법 아늑한 공간이 생겼지만 마음은 아늑하지 않았다. 시간이 주는 부담에 하고 싶었던 마음보다 해내야만 하는 부담감이 나를 지배했다. 공간이 하나하나 완성될수록 어쩌면 영영 못해낼 수도 있겠다는 괴로움도 함께 했다.


영월에 왔을 때 나의 부모님과 통영 시댁 부모님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 정리하고 산속으로 가겠다며 철이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도 기가 찬데, 그보다 이제 태어난 갓난쟁이와 3살 난 어린아이를 데리고 뭘 먹고살지에 대해서도 전혀 계획이 없는 우리의 당돌함 앞에 설전과 비난이 난무했다.


그래도 딱 한 분, 시 아버님은 한 번도 걱정의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우편배달부였던 아버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처럼 글과시 나무와 꽃을 사랑하던 통영 바닷가 작은 집의 아버님, 그분은 내가 만난 어떤 어른보다 어른이었고 어른 중에서도 가장 어른다웠다. 영월에서 자리를 못 잡아 허름한 아파트에서 방황하던 그해 겨울, 아버님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바람에 날아갈 듯, 말라가는 아버님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났다. 집을 지어 보겠다고 가족과 산속에서 한번 살아보겠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눈빛에 묻어있던 걱정을 뒤로한 채 한번 해보라고 기꺼이 말해주었던 사람.

우리가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의지할 누군가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막상 집을 짓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과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고 우리를 지지해 주었던 유일한 희망인 아버님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 응원에 보답하고 싶었다. 살아계실 때 뼈대만이라도 올라간 집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의지함이 만들어낸 온전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헛된 응원이 아니었다는 걸 그래서 조금이라도 고마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뜻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절실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조급했지만 절차와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일들 투성이었다. 일이 더디게 진행될 때면, 수도 없이 뜯고 못질을 할 때면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 나를 괴롭게 했다.

그때처럼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헛된 희망만이 가득한 꿈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시간이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갔을 때처럼 계절이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하자 나는 따뜻한 봄이 반가운 게 아니라 지나가는 겨울이 주었던 희망이 사라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버님의 물건을 정리할 때 유서처럼 발견된 종이에는 이런 말을 적혀 있었다.


화무십일홍 - 아무리 아름 다운 꽃도 십일을 피고 진다.


아버님이 마지막 힘을 다해 정성껏 썼던 다섯 글자.

그건 나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였고 위로의 말이었다.


모든 만물의 이치가 피고 지는 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던. 떠나던 발걸음에는 우리에 대한 걱정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다는 걸 응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박공지붕 두 개가 완성될 때쯤. 개나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가는 계절이 있으면 오는 계절이 있었고 절망 뒤에는 희망이 찾아든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꽃을 피우는 중이라고 애써 다짐하며 2층의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 했다. 너무나도 보여드리고 싶었던 집, 꽃잎과 함께 서서히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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