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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오 Jan 05. 2016

뒷모습 안녕

타인의 등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다.

저는 예전부터 유독 사람의 등을 좋아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첫 번째 이유는 등이 눈치 안 보고 사진 찍기 편고, 초상권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으니 게재도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정서적인 부분입니다.  누군가의 등을 보고 있으면, 제게 말을 거는 듯한 그 느낌을 주는 그런 등들이 있었습니다. 그 느낌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등이 들려주는 이야기 / 강릉 안목해변에서 / 2015.12


등은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습니다.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뭔가의 아우라는 순식간의 기교나 트릭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눈길이 제대로 닫지 않는 어떤 곳이고, 무관심해지면 어느 순간 허점이 보이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진에 제대로 된 등을 담을 때면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아빠의 등에 업혀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빠의 두 팔을 붙잡고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안겨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빠, 아빠의 등
내 어릴 적 모습의 오버랩
추억. 이쁨. 사랑.


아버지와 딸의 등 / 경주 불국사에서 / 2014.9


등을 통해 교감하고 부정을 느끼는 아이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의 뒷모습은 이 아이는 내 아이라고 강하게 얘기하는 듯했고, 그런 아빠의 품에서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의 등은 정말 안락해 보였습니다. 마음 깊은 편안함을 양쪽 등에서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강인함과 든든함 그리고 사랑스러움과 부드러움이 함께 느껴지는 순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와 함께 있는 아버지들의 뒷모습은 그런 양면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듯합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의 등이 참 좋습니다.






등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모든 해석을 보는 이의 판단에 맡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굴 표정처럼, 복근처럼 뭔가 표현하고 나타내기 위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해석하고 이해하며 상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없고, 틀린 것이 없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등은 직접 말하지 않아요


아침 6시40분경 홍대커플  / 홍대에서 / 2015.9
함께 보다 / 응봉산 팔각정에서 / 2015.12


똑같은 커플의 뒷모습이지만, 그들의 등은 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들의 등에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실 여러분이 느끼실 다양한 생각들이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정답은 없지만, 아마 대부분 다른 형태의 사랑이야기를 상상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한 이야기에 우리는 쉽게 공감하게 됩니다.


타인의 등을 통해 우리가 듣고 싶은 얘기를 듣기 때문 아닐까요?






어느 날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등을 통해 항상 나를 보고 있는 것 아닐까?


안목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잠기고 있던 그 등에도 저를 투영했었던 것 같으며, 아버지의 등에도, 커플의 등에도 제 모습들을 투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등이 우울해 보였다면 제가 우울한 것이고, 그들의 등이 넓어 보였다면 제가 충분한 사랑을 받은 것이고, 그들의 등이 단단해 보였다면  단단해지고 있는 내가 투영되고 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뒷모습 안녕?!


그래서 요즘 너른 등에 항상 안부를 묻곤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누군가의 등을 보이면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길을 가다 다양한 등에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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