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메노 규사쿠 '병 속의 지옥 3' - 금기의 사랑

[J문학] 유메노 규사쿠 - 꿈과 광기의 문학 01

by YOU EUN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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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 얼굴이 어땠을지 저는 모릅니다. 그저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고 가슴이 터질 듯이 요동쳐서, 벙어리처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아야코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하나님의 발판'이라고 부르는 그 절벽 위에 올라가 머리를 마구 긁어대며 엎드려 빌었습니다.

"아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여.

아야코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부디 저 처녀를 벌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정결하게 지켜주옵소서. 그리고 저 또한…….

아아, 하지만…… 하지만…….

오, 하나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이 고뇌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아야코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죄악입니다. 그러나 제가 죽는다면 아야코에게 더욱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겠지요. 아아,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저는…….

오, 하나님…….

제 머리카락은 모래범벅이고, 배는 바위에 짓눌려 있습니다. 만약 죽고자 하는 제 바람이 당신의 성스러운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제 목숨을 불타오르는 번개 속에 내던져 주시옵소서.

아아, 숨겨진 것까지도 모두 굽어보시는 하나님이시여. 부디, 부디 주의 이름을 우러르게 하옵소서. 당신의 은혜로운 계시를 이 땅에 보여주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계시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남빛 하늘에는 실타래 같은 흰 구름만이 빛을 내며 흐를 뿐……. 절벽 밑에는 새파랗게 소용돌이치며 새하얗게 포효하는 파도 사이로, 헤엄치며 노니는 상어의 꼬리와 지느러미가 이따금 팔딱거리며 보일 뿐이었습니다.

끝없이 푸르기만 저 심연을 하염없이 바라보자니, 제 눈은 어느새 빙글빙글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비틀거리며 넘실넘실 부서지는 파도 거품 속으로 떨어질 뻔했으나, 겨우 정신을 차려 절벽 끝에 멈춰 섰습니다. ……라는 생각이 든 순간, 저는 절벽 위 가장 높은 곳까지 단숨에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세워두었던 막대기와 그 끝에 묶어둔 마른 야자 잎을 과감하게 꺾어버리고는 눈 아래 아득한 심연 속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이제 됐어. 이렇게 해두면 구조선이 와도 그냥 지나쳐 가버릴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히죽히죽 조소하며 늑대처럼 절벽을 내달려 오두막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시편이 펼쳐진 성서를 집어 들어, 바다거북의 알을 구워 먹다 남은 잔불 위에 올려놓고는 그 위에 마른 풀을 던져 불을 피워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목이 터지라 아야코의 이름을 부르며 모래사장 쪽으로 달려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야코는 저 멀리 바다로 툭 뻗어나가 있는 곶의 커다란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두세 걸음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자줏빛 대암석 위에서 석양빛에 물들어 핏빛처럼 붉게 빛나는 처녀의 등 뒤로 흐르는 거룩함이란…….

점차 물이 차올라 무릎 아래 해조류를 씻어 내리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황금빛 폭포수 같은 파도를 뒤집어쓰며 성심껏 기도하는 숭고한 자태…… 눈부심…….

돌처럼 굳어진 몸으로 저는 잠시 넋을 잃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야코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깨닫고는 소스라치듯 놀라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달려 조개껍데기뿐인 바위 위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미끄러지면서 곶의 대암석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미치광이처럼 날뛰며 울부짖는 아야코를 두 팔로 꽉 껴안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가까스로 오두막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두막은 이제 그곳에 없었습니다. 성서와 마른 풀과 함께 하얀 연기가 되어 푸른 하늘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우리 두 사람은 육체도 영혼도 진정한 암흑 속으로 내몰려, 밤낮없이 통곡하며 이를 갈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고 슬퍼해 주기는커녕, 같은 곳에서 잠드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성서를 불태운 벌이겠지요.

밤이 되면 별빛, 파도 소리, 벌레 울음, 바람에 스치는 풀잎 소리,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 하나하나가 성서 구절을 속삭이듯 우리 두 사람을 에워싸며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도 못하고, 선잠도 들 수 없는 상태로 따로 떨어져 번민하는 우리의 마음을 엿보러 오는 것 같아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기나긴 밤이 밝으면 이번에는 똑같이 길고 긴 낮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이 섬을 비추는 태양도, 노래하는 앵무새도, 춤추는 극락조도, 비단벌레도, 나방도, 야자수도, 파인애플도, 꽃의 빛깔도, 풀 향기도, 바다도, 구름도, 바람도, 무지개도, 모두 아야코의 눈부신 모습과 숨 막힐 듯한 살결 향기와 뒤섞여 빙글빙글 빛나게 소용돌이치면서, 사방에서 제 숨통을 끊으려 덮쳐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속에서 저와 같은 고통 속에 시달리는 아야코의 고뇌하는 눈동자가, 신과 같은 슬픔과 악마와 같은 미소를 번갈아 머금으며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연필이 거의 닳아서 이제 더 길게 쓸 수 없습니다.

저는 이토록 모진 학대와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내리실 벌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진심을 이 병에 담아 바다에 던지려 합니다.

내일이라도 악마의 유혹에 굴복해 버리기 전에…….

적어도 두 사람의 육체만은 아직 깨끗할 때…….


아아 하나님……. 우리 두 사람은 이런 가책 속에서도 어디 하나 아프지도 않고, 날이 갈수록 통통하게 살이 올라 건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섬의 청명한 바람과 물, 풍요로운 먹을거리, 그리고 아름답고 즐거운 꽃과 새들의 보살핌 속에서…….

아아, 이 얼마나 끔찍한 형벌입니까. 이 아름답고 즐거운 섬이 이제는 완전히 지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당신은 왜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 타로 기록


◇ 세 번째 병의 내용

아버님. 어머님. 저희 남매는 사이좋게, 건강하게 이 섬에서 지내고 있어요. 빨리 구하러 와요. [아야코의 필체]

이치카와 타로

이치카와 아야코


<번역가의 한 마디>

첫 연재를 마무리하며 가장 고심했던 문장은 타로의 절망 섞인 기도문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빌며 '은혜로운 계시'를 간구하는 그의 역설적인 심리를 한국어의 정서로 옮기는 과정은 번역가로서도 무거운 가책을 함께 느끼는 경험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남매는 날이 갈수록 통통하게 살이 오르며 건강해지지만, 그들의 영혼은 반대로 말라 비틀어져 갑니다. 낙원이라는 이름의 지옥에 갇힌 남매의 마지막 유서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범한 삶과 도덕적 가치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서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유메노 규사쿠(夢野久作, 1889~1936)

"일본 장르 문학의 이단아, 인간 내면의 광기와 암흑을 그리다"

독보적인 색채: 유메노 규사쿠는 일본 추리 소설과 환상 문학의 거장으로, 그의 필명은 '꿈꾸는 사람(꿈만 꾸는 사람)'이라는 뜻의 규슈 방언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이름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기묘한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광기와 무의식의 탐구: 그는 단순한 범죄 수사를 넘어 인간의 무의식 밑바닥에 깔린 근원적인 광기, 근친상간적 욕망, 그리고 도덕적 파멸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데 천착했습니다.

탐미주의적 비극: 추하고 끔찍한 소재를 극도로 아름답고 정교한 문체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전율을 선사하는 '그로테스크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병 속의 지옥〉 — 낙원에서 시작된 가장 잔혹한 형벌

"도덕적 결벽이 빚어낸 찬란한 지옥"

서술 형식의 묘미: 세 개의 맥주병에 담긴 유서라는 형식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남매가 겪은 비극의 목격자가 되게 합니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병'의 짧고 순수한 문구는 앞선 절규와 대비되어 강렬한 비극성을 완성합니다.

아이러니한 지옥: 풍요로운 먹거리와 아름다운 자연이 가득한 낙원에서 남매는 죽지 않고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합니다. 하지만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과 그것을 부정하려는 종교적 양심이 충돌하면서, 그 풍요로움은 오히려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가장 잔혹한 형벌로 변질됩니다.

금기에 대한 공포: 타로의 절규는 단순히 육체적 욕망에 대한 죄책감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이 정한 질서와 인간의 본성 사이에서 갈가리 찢기는 영혼의 고통이며, 유메노 규사쿠는 이를 통해 '인간이 만든 도덕이라는 감옥'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주 일요일 오전 8시, 잊혀진 문호의 서재 두 번째 연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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