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잠깐 쉼표 찍고 가도 될까요?

퇴사하고 1년 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사람의 해명의 글

by 유시선


나는 참 어릴 때부터 꾸준함이 부족했다.

뭐 하나 진득하게 꾸준하게 오랜 시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대단해 보이고 부럽다.


지금도 꾸준함이 부족한 건 여전하다.

참, 꾸준함과 성실함은 분명 다르다. 난 꾸준하진 않지만 성실하다고!

성실한 나는, 7년 동안 한 직장을 열심히 다녔고, 내 생각보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꾸준함이 부족한 나는, 매일 일기 한 줄 쓰는 게 어려워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영어로 하려다가 한글로라도 써보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시작하지 못했다.

글쓰기도, 독서도, 운동도 무엇하나 꾸준하게 하는 것이 없다. 뭐 그래도 잘만 살고 있긴 하다.


지금은 1년째 백수 생활 중이다. 7년 동안 인정받으며 열심히 다녀온 회사를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사실 퇴사 후 몇 달간은 참 괴로웠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짐과 동시에 내가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깊은 땅굴을 파고 점점 깊이 들어갔다.

누군가 깊은 수렁에서 날 끌어올렸다. 날 수렁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나였다.

퇴사할 때의 나의 굳은 결심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퇴사하면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하며 설레어했던 나에게 미안했다. 지금 나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러려고 퇴사한 게 아닌데.


그래서 국비지원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을 무작정 신청했다. 3개월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성실히 다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에서 혼자 나머지 공부를 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일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무언가 배울 때 나오는 좋은 호르몬(?)이 나에게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번 시동을 거니까 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배울 만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다녔다. 또 취미생활도 이것저것 많이 시작했다.

영어 공부도 시작했고,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있고, 다이어트도 성공했다.

독서량도 내 생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10개월에 한 30권 정도.

그동안은 '한 번 해볼까?' 하고 망설였던 것들이 지금은 '한 번 해보지 뭐! 안되면 말고!'로 마음 가짐이 바뀌었다.


1년 동안 나는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회사에 다닐 때 보다 깊은 단잠을 자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한다.

무엇을 배우는 일도, 새롭 시도하는 일도 두렵지 않고 오히려 재밌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하루를 채워갔는데, 나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퇴사를 하며 난 결심했었다. 3~6개월 정도 쉬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자고.

지금은 퇴사한 지 10개월이 되었다.

마음의 여유는 진작에 찾았고, 더불어 자신감과 용기까지 얻었다.

퇴사 초반엔 매일이 쫓기는 삶이었고, 불안에 떨며 매일을 살았다.

지금은 매일 밤마다 내일이 기대되고 설렌다. 또 내일의 나는 뭘 도전할까? 어디에 갈까? 무엇을 할까?

매일이 재밌는 물음표 투성이다.


이제 퇴사하고 1년이 되어가는 즈음, 나는 또 기로에 서있다.

내가 벌려놓은 새로운 일을 계속해 나갈지. 안정적으로 하던 일을 찾아 직장으로 갈지. 프리 하지만은 않은 프리랜서로 살아갈지. 작은 1인 기업을 만들어볼지. 아니면 아예 생각지도 못한 기회로 새로운 것에 또 도전해볼지.


참 내일조차 예상할 수 없는 매일이다.


그래서 지금, 갑작스럽게도 난 강릉에 와있다.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갈 무렵, 집에서 고민하기보단 새로운 장소에서 고민하고 싶어졌다.

바로 에어비앤비를 알아봤고, 2주 숙박을 예약했고, KTX 표도 예매했다.

이 모든 것이 약 1시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도 나를 참 모르겠다. 즉흥적이면서도 계획적인 나..


매번 여행을 하게 되면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이곳에 올 때는 정말 0.0001도 계획하고 오지 않았다. 숙소만 예약했을 뿐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관광지에서 좀 벗어난 곳에 숙소를 예약했을 뿐.


덕분에 나는 원룸보다는 좀 더 넓고 발코니가 딸린 숙소에서 글을 쓰고 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도로의 자동차 소리가 왠지 모르게 힐링된다.

글도 술술 써지는 느낌이다. 그건 당연하다. 아무 말이나 떠오르는 대로 적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백스페이스란 없어. 전진만 있을 뿐이야.'


이런 자신감과 용기는 꾸준함이 없는 나에게 언제까지 이어질까?

내 바람으론 평생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나라면 어떤 일이 닥쳐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퇴사하며 쉼표를 찍으려 했는데, 요즘은 물음표와 느낌표의 연속이다.

이거 해볼까? 이거 해야지! 저거 해볼까? 저거 해야지!

요즘은 내가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하기 바쁘다. 이 글의 시작도 바로 벌려놓을 일들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럼 오늘도 재미있을만한 물음표를 찾아 밖으로 나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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