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된장국

by 영주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는 잣대로 시래기 된장국을 보면 참 못생겼다.

거무튀튀한 잎파리와 누렇고 물에 불어 터지기 직전인 줄기들이 건더기로 둥둥 떠있는데, 무청 시래기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진한 된장냄새는 시골 구석 할머니 집 부엌에 와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어릴적 만화영화에서 보던 가난한 가족이 떠먹던 야채 스프 같기도 하고.


엄마가 어린 나를 키울 땐 육수팩이나 코인육수 따위가 없었어서 하루 온종일 똥을 뺀 멸치 몇 마리와 미리 잘라둔 다시다 한 줌을 넣어 오랫동안 끓인 육수로 맛을 냈다. 육수를 달이느라 제 역할을 다 한 멸치와 다시다는 버려지지 않고 다시다는 잘게 썰어 시래기 건더기처럼, 멸치는 소고기 건더기 대신 아니 그보다 더 풍부한 영양가가 있는 것이라며 엄마는 완성된 시래기 된장국에서도 그들의 가치를 되짚어주었다.


쿰쿰한 냄새, 못 생긴 외형, 궁상맞은 엄마의 멘트가 어우러져 나는 시래기 된장국이 밥상에 올라올 때마다 괜한 거부감이 들었다. 한창 예뻐보이기만 해도 부족할 10대에는 된장국 냄새가 옷과 머리에 배어버릴까봐 넌덜머리까지 낼 정도였으니.


나이가 차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시래기 된장국 맛을 제대로 구현하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 이따금 백반 집의 한상차림 반찬으로 시래기 된장국이 나오면 반가울 정도가 되었다.

어떤 날은 그 맛이 사무치게 그리워 재래시장 골목에 위치한 노포 해장국집까지 일부러 찾아가 한그릇 비우기도 했지만 엄마가 해주던 시래기 된장국에 대한 갈증은 더 차오르기만 할 뿐이었다.



지난주 신랑 손잡고 뚤레뚤레 구경 갔던 지역 축제 부스에서 말린 무청 시래기를 단돈 만원에 팔길래 호들갑을 떨며 9천원에 사왔다. 수산시장이나 재래시장에서 늘상 가격을 흥정하고 서비스를 종용하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사는 게 다 이런건가보다,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깨닫는 세상의 이치처럼, 시래기 된장국 냄새같아 싫어했던 엄마 아빠와 나의 모습이 투명도가 비슷해지는 것이 머쓱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우거지, 시래기 말린 것을 보면 반갑긴 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가 이번에는 고민의 여지없이 시래기를 사가겠다고 나섰다. 당당한 모습과 달리 카드결제 단말기가 영수증을 채 다 뱉어내기도 전에 "근데 이모, 이거 어 떻게 해먹어야 되요?"라고 묻는 내가 새색시 같은지, 뒷편에 선 시골 할아버지들이 놀리고 싶어 안달복달인게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내려와 지방에 산지 5년차 짬이 찬 내게 그들의 이죽거림은 더이상 언짢음이 아니라 귀여움으로 다가온다. "한 번도 안해봐서..(쭈굴)"하며 싱긋 웃으니 재롱부리는 손녀 보듯 즐거워 하는 노인네들.

예전엔 이런 행동이 뜨내기 같아 보일까봐 더욱 새침한 척을 하곤 집에 돌아와 쪼르르 이르듯 엄마에게 전화해 레시피를 알려달라며 츠근거리곤 했는데, 5년 사이에 성미가 급해진건지 엄마의 도움 없이도 잘 해먹고 있음을 증명해보이고 싶은건지. 모를 일이다.


신난 할아버지들이 알려준대로 20분을 푹 삶은 후, 불을 끄고 1시간 정도 불려두었더니 집안에 가득 어릴 적 밭았던 쿰쿰한 시래기 냄새가 가득해졌다.

멸치 똥을 따고, 다시다를 손수 자르는 작업이 생략된 시대인데도 시래기를 끓이고 물을 빼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는데까지 꼬박 한 두시간이 걸렸다. 엄마 무릎과 허리가 괜히 아픈게 아니었네.


수면양말을 꺼내 신어야 할만큼 날이 차다. 얼려둔 시래기 한 봉지를 꺼내 해동하고 코인육수로 아주 손쉽게 우려낸 육수에 엄마표 집된장을 풀어 팔팔 끓인 후 참치액젖과 다진마늘을 대충 넣고 맛을 내었다. 시래기를 푹 담궈 한소끔 끓여내고 간을 보니 엄마가 끓인 시래기 된장국 맛이 났다.

처녀귀신처럼 흐트러진 시래기 이파리들을 가위로 숭겅 숭겅 잘랐더니 제법 노포 식당의 것과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서둘러 먹고싶어 어금니에 침이 가득 고여, 입술 밖으로 흐르기 전에 서둘러 집에서 제일 큰 국그릇을 꺼내 된장국을 가득 담고 밥까지 말아 상을 차렸다. 한 숟가락 입안 가득 담고나니 속까지 데워지는 느낌. 그래, 시래기 된장국이 이런 맛이 나야지. 우걱우걱 밥을 먹어대며 곱씹어보니 꼭 겨울 초입에, 그게 아니면 몸이 으슬으슬거리는 한기가 들 때에, 마음이 헛헛할 때마다 이 뜨끈하고 걸쭉한 시래기 된장국을 찾았던 것 같다.

깊고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시래기의 식감이 아프지 않은 곳까지 낫게 해줄 것만 같은 기분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가 또 아팠던 걸까. 어디를 치유받고 싶었을까.


모쪼록 첫 시도에 대단히 성공적인 성적을 거둔 나의 시래기 된장국은 손맛도 유전이 된다는 가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엄마가 끓여줬었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사실이 조금 뿌듯했다가도 다시 해석하면 엄마 없는 일상이 내게 너무 당연해졌다는 것과 같아 잠시 외로워졌다. 내 세상에서 엄마가 정말 많이 멀어졌구나 싶어서. 그래도 괜찮은거구나, 알게되어버려서.

엄마 없는 세상에선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을거라 확신했었는데 현실은 닳지 않는 건전지를 끼워둔 시계처럼 째깍 째깍 제 속도에 충실하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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