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없는 하루

by 영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n요일, 아침부터 남동생과의 채팅으로 지루함을 달랬다. 주제는새로 바꾼 친정집 소파였는데, 그 자금의 출처가 엄마 병원비 보태 쓰라고 내어준 것이라 화딱지가 났다는 막내의 넋두리. 사실 소파 사건의 전말은 큰누나&작은 누나의 합작이었는데―친정 갈 때마다 거슬렸던 낡아빠진, 첫째 둘째 사위 보여주기 조금은 창피한, 앉을 때마다 꺼지는 깊이만큼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그런 소파를 바꾸라고 채근한 지 몇 개월만의 성과인 것이다. 그 불길이 애멀게 아직 분가하지 못한, 이제는 병원비도 턱턱 내어줄 줄 아는 다 큰 막내아들로 향한 모양새가 웃겼다.

며칠 전 엄마와의 카톡에서 새 소파가 단단하니 누워서 드라마를 보기에 무척 좋다는 감상평을 대신 전달해 주니 '아무렴 그래야지'라는 반응인걸 보니 아직은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나보다.



며칠간 시달린 고된 업무 때문인지 기지개를 켜다 어깨와 목에 급성 근육통이 몰려와 조퇴를 했다. 회사를 나오며 떠올려보니 어제는 밤 운전 중 이명이 들리고 넋이 나가는 바람에 빨간 신호를 보지 못하고 엑셀을 밟는 불상사가 있었다. 체력에 빨간불이 켜진 모양이다. 이럴 때에는 엄마의 표현을 빌려 '깝죽거리지 말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으므로 병원에 들러 침도 맞고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괜히 엄마 말 잘 들은 것 같아 스스로 기특하고, 이런 날은 달달한 것 입에 넣고 낮잠 자야 제맛이라는 핑계로 홀린 듯 빵집에 들어가 이미 정해둔 것처럼 피자빵을 샀다. 덜-렁, 손에 든 피자빵을 보니 홈메이드 영숙 피자맛이 떠올라 그립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늘 남들은 다 사 먹고 마는 바깥 음식―햄버거, 치킨, 자장면 같은 것들을 직접 만들어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 여태 그리워하는 메뉴가 피자인데 이것의 킥은 토마토소스가 아닌 '케첩'베이스라는 것.

얇게 펼친 밀가루 반죽 위에 피망, 케첩, 도시락햄, 양파, 다짐육, 양송이버섯을 가득 올려 한 번 굽고 불을 끈 다음 피자 치즈를 우수수 뿌려 뚜껑을 닫아 잔열로 치즈를 녹여주면, 고소하고 촉촉한, 케첩의 새콤함이 강조된 영숙표 홈메이드 피자가 완성된다. 가끔 엄마는 직접 재료를 올려보라며, 요조숙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식들에게 실습을 시켜주기도 했지만 그건 실패한 것 같고 모쪼록 함께 만든 옛날 그 피자가 무의식 중에도 그리운지 나의 최애 베이커리이자 소울 푸드 중 하나가 바로 소시지빵, 피자빵 뭐 그런 것이 된 것이라는 별 것 아닌 발견.


이런저런 생각들을 뒤죽박죽 늘어트리며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놓인 단정한 택배 상자 하나. 지난 초여름 40일간의 유럽살기를 마치고 돌아온 친구가 보내온 것인데 군것질 거리, 예쁜 엽서, 이제는 올리브영에서도 파는 해외 유명 치약이 들어있다. 여행 중에도 종종 내 생각이 나 그때마다 샀다는 다정한 멘트와 함께 빼곡히 적힌 글자 사이, 체력만큼이나 고갈되어 있던 마음의 호수를 가득 채워준 문장이 있다.

「추천해 준 책을 읽다가 문득 책 제목이 모든 것에 안부를 묻는 다정한 너를 닮아 자꾸만 웃음이 난다」는 대목이었고 추천해 준 것은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라는 제목으로, 시인의 시선으로 본 자연과 생명의 관찰일지 같은 책이다.

'오래된 사이라서', '오래된 사이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거나 더 가까워야 한다는 인과관계를 탐탁지 않아 하는 편인데 이 글귀만큼은 정말이지 그녀와 내가 엮어가는 관계의 역사 때문에 가능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아가 그것을 알아주는 오래된 인연의 존재에 감사했고, 얼마동안 나를 매몰시킨 휘발성 짙은 인간관계 속에서 얻은 생채기의 따끔거림이 말끔히 씻겨져 가는 것만 같았다.



큰 일없이 별 것 없는 하루였다.

다만 그 안에서 어떤 지점들이, 어떤 썸네일들이 멀리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신호등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선명해졌다가 흐려졌다가를 반복하고 그것들을 따라 걷고, 멈추고, 달리는 일상의 연속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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