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라는 그런 인사 보다

by 영주


누군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 오래간만의 안부 인사를 나눌 때 '아프지 마'라는 문장을 쓰지 않으려고 애쓴다.


말 자체가 가진 다정함과 염려는 안녕을 비는 적절한 표현이지만, 막상 당사자의 물리적 고통을 고려하면 사실 조금 약오를만한 말인 것 같다. 아프니까 예민해서 혹은 그것이 사람을 비관적으로 만들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겪어본 바로는 피부, 세포, 뼈, 뇌가 느끼는 물리적 고통은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변하지 않는 것인데 "아프지 말라"니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닌것을. 스스로 듣기 불편한 말을 누군가에게 하고싶지 않아 '아프지 마'라는 평범한 인사를 대신할 문장을 찾는다.



병치레라면 부족함 없던 유년 시절. 내도록 병치레와 함께한 나를 키워낸 엄마는 내 입에서 아프다는 말만 나와도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었다. 이제야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서도 달이 바뀌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크고 작은 병을 달고사는 딸을 들쳐업고 소아과를 오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도 했을테니. 자라면서 그만큼 아팠으면 된거 아닌가라는 오만함때문인지 결혼 직후 고작 32년밖에 쓰지 않은 허리 디스크가 북-찢어져 걷지도 못하고 누워 발가락 하나 움직일 때마다 식은땀이 주륵- 흐르던 날이 길었다. 그때 배운 신체적 고통의 공포와 두려움, 괴로움에 대한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자에겐 감정섞인 후기일 뿐일 수도 있겠다만, 정말이지 질병의 고통이란 혹자의 말처럼 인간의 한계를 잊지 말라고 주는 신의 형벌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떠들어보자면 신체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으로 시작된다. 이번에는 얼마나 언제까지 어떻게 아플까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을 깨닫고나면 울분과 짜증, 절망 섞인 분노가 생긴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내가 뭘 잘못한건지 피아식별 불가능한 원망이 몸과 마음을 잠식하고 그 다음은 죽이든 살리든 망가트리든 신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체념의 단계로 접어든다. 이런 과정을 셀 수 없이 거치고 나면 -물론 그 횟수는 질병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신에게 감사하고, 또 어떤 날은 이따위 아픔따위 거뜬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엔 정상화된 몸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앞으로는 두번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해 새 삶을 영위하리라는, 며칠이면 흐트러질 의지를 굳히며 일단락된다.


이렇듯 내가 겪었던 바로는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이전과 같이 무엇이든 편히 먹어서도 안된다는 간단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와르르 무너지는 일상과 듸죽박죽 망가진 마음은 자아를 결국 벼랑 끝에 홀로 남긴닼 이것이 내가 느낀 '병'이다. 그야말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문동은(송혜교 役)의 대사와 같다 ― '그냥 당하는거야'. 덧붙이자면 속절없이.


서른 후반이 되면서 주변에 건강의 적신호를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는다. 갑상선, 담낭, 용종, 물혹, 유방암.. 종류도 다양한 불행들.


그들에게 나는 절대로 안 아파 질거라는, 아프지 말라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치료가 끝나면 얼굴 보러 가도 될까요?"라던지 "괜찮아지면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갈까?"와 같은 먼, 혹은 곧 있을 미래를 약속하려고 한다. 동시에 그저 그들이 겪을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수시로 움켜쥘 손이 맨주먹이 아니기를 바란다.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어떤 영화에선가 손에 작은 돌맹이 따위를 움켜쥐면 더 센 주먹을 날릴 수 있다고 했다. 그것과 같이 조금 더, 젖먹던 힘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주먹에 자기만의 돌맹이 하나쯤 쥐고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내게는 그것이 밤낮없이 함께 재활에 참여해준 신랑이었고, 매일을 웃게하는 순진무구한 반려견이었고, 아픈 것 끝나면 할머니 몰래 달고나 만들어주겠다며 새끼 손가락 걸어주던 엄마의 얼굴이었고, 미술이 2교시나 있는 날엔 등교할 수 있겠지란 기대감같은 것들이었다. 정형화할 순 없지만 오롯이 혼자 지나야 할 터널을 지나올 이유들이었겠지. 내게 소중한 이들이 꼭 아파야만 한다면, 그 터널을 그들도 견뎌내야 삶이 지속된다면 이런 돌맹이 하나 둘 손에 꼭 쥐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사실은 그것 말고는 현실적인 혜안도, 해답도 없다는 말을 해줄수 없기 때문에.


어떤 병은 죽음으로서 종말을 맞이하기도 하고, 또 신체의 일부를 망가트려야만 끝날 때도 있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은 당사자 혼자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기다리며 그대의 안녕만을 위해 기도하는 이가 있다는 것 역시 변치 않는 사실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다. 그게 그대의 작은 돌맹이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을 함께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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