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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Nov 21. 2022

회사에서 나 빼고 다 X같을 때 읽을 글

회사는 일을 하는 댓가로 임금을 주는 곳이다. 조직 구성원이 매 순간, 매일, 매주 그리고 매월 매년 해내는 크고 작은 '업무'가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영향을 맺고 그것이 성장으로 나아가게끔 하며, 그 성장이 또다시 나의 과업과 임금을 보장해주며 존속 가능하게끔 만들어주는 ㅡ순환구조의 생태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태계에 발을 디딜 때 날 사랑하는 이들이 가장 강조하며 일컬어준 말 중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이란 문장은 유달리 와닿는, 새겨두고 싶은 수칙이다. 나아가 그간 짧게나마 경험한 10년 간의 회사생활을 통해 터득한 것도 비슷한 결이다.


첫째, 일 하러 왔으니 일을 할 것.

둘째, 일은 하다 보면 되는 것.


이렇게 나열해두니 나는 생각보다 조직적(side) '회사원'재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체육대회니 워크숍을 빙자한 단체여행을 혐오하지만)

가령 누가 봐도 무능력한 상사가 일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거나,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축내고 있을 때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대로 이상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상사를 만나면 일이야 고되지만 명확한 방향성과 오더(order)로 일을 하다 보면 즐거울 때가 꽤 있다. 이런저런 경험을 미루어 보았을 때 나는 "일 하러 오면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며, 동시에 그것 외에서 오는 갈등과 불편함을 싫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근래 그것들에 균열이 생겼다. 아니, 취약점이 발견된 것.

회사에서만큼은 일에 집중하고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질은 그곳에서 발생하는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와 이기적인 이해관계들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 -정확히는 '업무'와 무관한 것들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취약점은 조직의 크기와 구성원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부각되는 듯하다.


일상 대화는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지 않은 채 흘러갔고 확산되며, 그것을 무기로 돈독해진 직장상사와의 관계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팀원 또는 조직원에 의해 개인의 과업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 모두가 느끼는 불합리함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을 공론화하는 사람이야말로 편 가르기를 한다는 피드백을 받는 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실태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나야말로 감정을 앞세워 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현상은 스스로를 "이곳에서 나는 가치 없는 사람, 관계 맺을 줄 몰라 내 밥그릇 제대로 못 챙기는 사람, 내 입지를 내가 깎아먹는 사람"으로 치부하기 쉽게 만들었고 난생처음 겪는 이상한 흐름에 길을 잃어가던 와중, 나를 각성시킨 한 마디.


"나 역시 그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X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친목을 앞세워 편하게 과업을 처리하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오지랖 넓은 말들로 본인의 무능력함을 무마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일을 중시하고 원칙을 이야기하는 나는 어떨까?

X 같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빠진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인 화장실 하수구가 통째로 녹아버린 듯한 쾌적함을 느낀다.


앞으로는 곧 꺼질 연탄을 끌어안고 혼자서 불씨를 살려내려 애쓰고 있다는 애처로운 자화상을 그리려 하지 않고자 해본다. 꺼지는 연탄에 애써 나의 마음을 두지 않아보려 한다. 많은 이들의 세상이 있음을, 그 세상은 각자의 궤도가 있음을, 그 모든 것이 합치될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다시금 되뇌며, 고유한 나의 재질에 부러 생채기를 내지 말아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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