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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Sep 27. 2023

#2. 여행의 준비

반려견과 함께 떠나는 5박 7일간의 제주여행



너 T야?라는 밈이 돌 정도로 최근 몇 년간 MBTI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거나 스스로를 드러내기에 적절한 도구로 작용된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성향파악 요소는 T와 F, J와 P의 대조이지 않을까. 이런 성향의 차이는 이번 제주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는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짤처럼 P의 성향인 신랑과 J 성향인 나는 ‘여행준비’ 개념부터 천지차이였던 것.



5박 7일간의 짧지 않은 시간, 적지 않은 경비를 들여 떠나는 여행에 앞서 나는 준비할 것, 여러 불안감을 감소시켜 줄 목록이 수첩 한 장을 꽉 채운 반면 신랑은 ‘가서 뭐 하지? 가서 뭐 먹지? 재밌겠다’의 연속이었다. 아이고, 이를 어쩐담. 아무리 스마트폰이 발달하고 5G LTE강국인 나라에 살고 있다지만 굵직한 하루의 계획 혹은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할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한 나와 너무 다른 준비태세였다. 더구나 ‘강아지와 함께‘라는 여행의 조건은 챙겨야 할 일들이 +a로 더 많아진다는 의미인데, 음.. 이렇게 한가로이 있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 자주 찾아왔던 지난 며칠.


결국 업무시간 중 짬을 내어 엑셀파일을 열었고 각 셀에는 숙소의 주소와 연락처, 입퇴실 시간, 숙소와 여행지 또는 식당 등과의 소요 시간 등이 안정적인 모습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되었고 그것을 펼쳐두니 조금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퇴근 후 식탁에 앉아 파일을 열어 보여주니 ‘우와, 이대로 가면 되겠네 ‘라는 단조로운 감상평에 잠시 욱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 성향이 다른 것을 탓할 수 없었고 누가 시킨 적 없는 일을 혼자 한 것이 서운할 일은 아니라며 마음을 가다듬어보았다.



내게는 떠나기로 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여행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시작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여행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헤아리기 어려웠던 사실을, 한소끔 끓었다 가라앉은 냄비처럼 차분히 마주하고 나니 이것 역시 여행을 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여정 중의 하나라고 여길 수 있었다.


얼마 전 20대 시절 모든 배낭여행을 동행했던 동생이 내가 사는 먼 곳까지 찾아와 하룻밤을 묵고 갔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이 이 짓궂은 여행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동생과 신랑의 MBTI가 같다는 것ㅡ둘 다 극-P였다. 아이고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의 모든 여행에서도 너무 다른 성향의 동생과 지낸 모든 순간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행’이라는 터널을 사이에 두고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고, 때로는 그것을 믿고 의지해 이끌려보기도, 이끌어보기도 하며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여정’이 아닐까.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이라는 단어가 밤하늘의 달처럼 두둥실 떠오를 때마다 설레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저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경치를 감상하고 맛있는 타지 음식을 경험해 보는 것만이 여행이 아닌 것을, 잠시 잊고 지냈었나 보다. 따지고 보면 여행 자체가 그렇다. 익숙해서 편안하게 영위하던 일상의 궤도, 즉 현재에서 벗어나 생경하고 낯선 시공간에 나를 떠밀어 보는 것. 그 모든 것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사실 아직도 훤히 펼쳐진 캐리어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옷가지와 간소한 캠핑장비들이 마뜩치 않고 ‘날 좀 정리해 줘’라고 외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여행의 출발이 아직 3일이나 남았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서도, 여행의 준비란 어쩌면 다른 세상을 맞이하겠다는 마음가짐 그 자체가 아닐까라며 스스로 정신 승리를 위한 경로를 잃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늘 기대 이상의 합(合)을 보여주는 신랑과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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