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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Oct 13. 2023

오늘의 귀여움 #1. 나의 허당스러움

172cm의 큰 키에 마른 체형. 쌍꺼풀이 얇고 눈꼬리가 올라간 편. 낯을 가려 처음 만나거나 자주 보지 않으면 수다스럽지 않은 타입. 차가운 인상에 목소리 톤이 낮고 말투도 상냥하지 않은 것이 더해져 초면이거나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제법 어려워하거나 차가운 사람이라고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그 첫인상은 친분이 쌓인 후 '이런 사람인 줄은..' 이라던지 '첫인상이랑 정말 다름'이라는 감상평으로 반전을 거듭하고 그 이유는 아마 내 허당스러움 때문일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맞다고 쓰는 게 더 맞을 듯)


내 허당스러움이란 가령 이런 식인데 ㅡ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노트북과, 관련 자료를 담은 usb와 백업파일, 온라인 드라이브의 2차 대비 파일과 유인물까지 챙겨가는 타입이지만 정작 숙소에서 캐리어를 열면 속옷 바구니를 챙겨 오지 않았다던가. 자기주장이 명확하고 의사 표현을 잘하는 타입이지만 시리얼에 우유를 붓는다던가, 입구가 좁은 병에 다른 액체를 담을 때면 꼭 한번 쏟아야 직성이 풀리고 하얀 상의는 늘 커피, 고춧가루 자국으로 괴롭히는 그런.. 



이번 직장에서는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유독 허당스러움을 자주 노출되곤 하는데 나이도 제일 많고 입사일도 제일 느린 나를 다들 어색해하던 입사 초기. 함께 다과를 먹으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간에 맞은편에 앉은 매니저가 나를 보고 웃음 그 이상의 폭소를 터트린 적이 있다. 이유인즉슨 "얼굴이랑 가슴팍에 과자를 그러게 묻혀놓고, 뭐가 그렇게 진지하신 거냐"며 눈물까지 훔치면서 웃는 게 아닌가? 아뿔싸..! 잠시 얼굴이 붉어져 서둘러 과자를 털어내려고 휴지를 집으면서는 종이컵에 받아둔 콜라마저 엎어버렸으니. 


아마 나의 허당스러움은 길쭉한 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생기는 오차나 오류 같은 건 아닐까? 


어제는 며칠째 욱신거리는 내성발톱 때문에 점심에 짬을 내어 네일 샵에 갔다가, 1시가 다 되어 나오는 길에 꼬마김밥을 포장했고 복귀하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며 하나씩 집어 먹었다. 그것이 괜히 즐겁고 또 김밥 역시 맛이 좋아 신이 나서는 회사에 도착해 내리면서 빈 비닐봉지를 빙빙 돌리며 회사 복도로 들어섰는데, 센터장님이 뭘 사 왔냐고 묻다가 말고 얼굴을 획 돌리시는 게 아닌가? 

김밥이용. 오면서 먹었는데. 하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센터장님이 눈을 피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입술 여기저기 김 부스러기가 묻어있어 누가 봐도 "김밥 맛있게 먹었어용"의 얼굴이었던 것.


이 이야기를 폭소했던 직장 동료에게 해주었더니 역시가 역시 했다며 그 정도면 플러팅 아니냐고 한참을 또 깔깔댔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스스로의 덤벙거리고 야무지지 못한 내가 창피했었는데, 신랑의 피드백처럼 이제는 나의 이런 모습을 귀여워해볼까 싶다. 오늘의 귀여움이란, 미운 것도 좋아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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