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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Nov 29. 2023

누군가를 잃은 그대에게


어떤 마음은 절대 녹지 않는 큰 얼음과도 같아. 가슴 깊이 박혀 아릴 만큼 차가운 냉기를 평생 뿜어댈 거야. 그 얼음은 녹아서 사라지지 않아. 그저 그 냉기에 내가 익숙해지고 무뎌질 뿐인 것 같아.


10년 전 어느 제주도의 식당에서 누군가 벽에 적어둔 글귀가 자꾸 생각나. 나이가 들 수록 늘어가는 것은 체념뿐이라는 말. 나이가 든다는 건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의 얼음들이 내 안에 머무는 것 같기도 해. 불편한 얼음에 안락함을 느끼도록 어떤 슬픔을, 어떤 괴로움을, 어떤 고독함을 체념하는 건 아닐까.


때론 사라지지 않는 얼음에 숨이 막히고 외마디 비명을 뱉고 싶을 때가 있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공평해서 오히려 좋아.


말했듯이 얼음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거야. 혼자 운전하는 차 안에서, 일을 하다가도 문득, 음식을 먹다 말고 갑자기, 그저 날이 좋거나 흐릴 때에도 계속 계속 네 곁에 찬 기운을 뿜어댈 거야.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아. 서서히 그 빈도는 줄어들고 주기는 길어져서 언젠가는 얼음이 곧 내가 되는 날이 올 거니까.


이제는 잃은 이의 사진을 보거나 이름을 들어도 울거나 슬퍼만 하지 않아. 눈물과 슬픔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건 거짓된 사랑임이 분명해. 우리가 평생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안고 살아갈 찬 얼음은 사랑과도 같아. 녹아서 작아지거나 사라지지 않지. 그러니 나를 떠날 일도 없어. 안심해.


어떤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그것에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가 있어.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평생 그의 목소리를 듣거나 함께 살을 부대끼고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건 그런 일과 같아. 그러니까 있잖아, 너무 애쓰지 마. 슬픔은 슬픔대로 눈물은 눈물대로 흘려보내다 보면 이따금 찾아오는 울렁임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일상을 걸어갈 잔근육이 생길 테니까.


그때가 되면 네 옆에 있는 날 봐. 손 잡고 함께 떠다니자.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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