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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an 15. 2024

강아지와의 대화

증조 할머니나 할아버지 즈음에 분명히 푸들이나 말티즈가 있었을 것만 같은 비숑 프리제, 암컷 3살 '나무'와 함께 사는 부부의 이야기. 





"정수." 

"반컵." 


정수기가 건네는 말이 제 것인 양 토독 토독 발소리를 내며 뒤에서 강아지가 다가옵니다. 정수기에서 갓 나온 신선한 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 코로 제 종아리를 콩, 콩 찌르고 빠안히 올려다봅니다. 


물 달라고? 


식수컵 옆에 미리 마련해 둔 작은 종지에 물을 따라 자세를 낮춰 내밀면 할짝할짝 잘도 마십니다. 제 양을 다 마시고 나면 그릇을 치워달라는 듯 자리를 뜨지도 않고 다시 한번 빤히 저를 쳐다보는데 이건 "턱 닦을 거지? 기다릴게. 얼른 닦아"라는 말입니다. 


몸을 서두르면 저 작은 강아지가 흠칫 놀랄세라 천천히 몸을 다시 일으켜 키친 타월을 뜯어 강아지의 축축해진 턱을 꾹- 꾹 눌러 닦아주면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납니다. 







아침이 밝아도 나무는 우리를 부러 깨우지 않습니다. 일정한 시간, 즉 배가 고픈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제야 얼굴 앞에 엎드려 빤히 한참을 쳐다봅니다. 숨소리를 들으면 이 보호자 놈들이 정말 자는 것인지, 자는 척을 하며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금세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자세를 낮춰 우리를 관찰합니다. 아주 영리한 동물이지요.


강아지와 사람이 눈을 맞춤과 동시에 아침이 시작되고, 하루가 생명을 얻습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환기를 위해 베란다 문을 열려고 몸을 돌리면 어느새 하얗고 작은 강아지가 유리문 앞에 서서 당돌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서 문을 열라는 뜻이죠. 나무는 매일 아침 안방 베란다에 나가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밤새 아파트 단지가 안녕했는지 검사라도 하듯이 10~15초간 빤히 쳐다봅니다. 저 멀리 고양이나 강아지 냄새가 나는 날이면 웡, 웡! 하며 잘 짖지 않아 잠긴 목소리로 짖을 때도 있답니다. 


추운 겨울 찬 공기가 싫어 문을 열지 않는 날이면 문틈 사이로 코를 누르듯이 대고 훅-! 훅-! 거리며 냄새를 맡습니다. 시위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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