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열정이다.
-마크 주커버그-
EBS에서 만든 10부작 ‘교육 대기획’이라는 프로그램 중 8부의 주제인 ‘상위 0.1%의 비밀’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하다. 나는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중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하는 아이들의 차이를 항상 막연하게만 느껴왔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에는 동료 교사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다시 보기를 권할 정도로 나에게는 ‘맞아,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상위 0.1%의 아이들 800명과 보통 성적인 70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전수조사를 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위 학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
첫째, 상위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차이는 기억력이나 아이큐가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할 수 있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김현철 교수팀에서 상위 학생들과 보통 학생들에게 전혀 관련 없는 단어를 여러 개 보여주고 암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몇 개의 단어를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뒤에 아이들이 직접 외우고 있는 단어를 적도록 했다. 신기하게도 상위 학생들과 보통 학생들이 외울 것이라고 예상한 단어 수나 실제 외운 단어 수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상위 학생들 중에 7개를 외운 학생들도 있고, 보통 학생들 중에 7개를 외운 학생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상위 학생들은 ‘7개를 맞출 것이다’라고 예상을 했다면, 실제로 7개를 맞추었고 보통 학생들은 ‘10개를 맞출 것 같다’라고 예상을 했지만 7개를 맞추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상위권 아이들은 어떤 과목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혹은 어느 정도 부족한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실험에 대해서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지만,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너무나 많은 시험 범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상위권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과목에 어느 부분을 잘 아는지 모르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므로 공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0.1%의 아이들은 막연하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가 아니라 ‘어떤 과목을 어느 시간에 어떻게 공부해야겠다’라고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루동안 해야 할 공부 계획을 세우고 난 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세운 계획을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한다.
둘째, 상위 0.1% 학생들은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 중 한 학생은 어려운 부분을 공부할 때는 교사가 수업하듯 설명하는 '선생님 놀이'가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즉, 자신이 교사가 되어 직접 그 부분을 설명하는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틀린 문제를 표시해서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하는 공부 방법이 자신에게 잘 맞다고 했다.
내가 3년 동안 기숙사 사감을 하면서 본 상위권 학생들 역시 저마다 다양한 공부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늘 12시쯤에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4시에 기상해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하기 전까지 공부하곤 했다. 또 다른 학생은 평소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말 그대로 그날그날의 공부만 겨우 하곤 했는데 시험 2주 전에만 몰아치는 공부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러한 벼락치기 공부 방법을 선호하지 않아서 아이에게 여러 번 공부 방법을 바꿔 보라고 했지만, 아이는 중학교 때부터 이 방법을 써 왔고 스스로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다. 신기한 건 이 학생의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이 높았고, 고 3 때의 입시 결과 역시 좋았다.
상위 0.1%의 학생들은 이렇게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줄 수 없고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자신에게 잘 맞는 공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한 학생을 내가 가르치는 상위권 보충 수업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공부 비결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그 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
“많은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 스타일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공부 방법을 사용해 보는데요. 저는 그런 방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어차피 수능 전까지는 장기 레이스기 때문에 천천히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찾지 못해 걱정하면서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19년 동안 슬럼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것 아니겠어요?”
실제로 작년에 내가 지도했던 한 학생은 전 과목 1등급이었는데 일 년 내내 자신의 공부 방법 때문에 힘들어했다. 내신 한 달 전에 공부했더니 시험 직전에 지쳐서 힘들었다면서 다음번 내신 때는 2주 전에서야 준비기간으로 들어갔고, 그때에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게 시작한 것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 학생이 여러 가지 공부 방법을 사용하며 고민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1등급을 유지했다는 점은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째, 학교 수업을 가장 중시한다. 학교 상반 수업 속에서도 사실, 극상위권과 상위권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100점을 맞아서 1등급인 학생과 92점을 맞아서 1등급인 학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극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수업에 집중한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필기를 하며, 내가 농담을 하는 순간에도 눈빛을 반짝이며 반응해 준다. 그들은 학교 수업 중에 졸지 않으며, 50분 동안에 배운 모든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위에서 언급한 1500명 전수조사 결과 중에서 0.1% 학생들의 공통적인 대답 중에 하나가 바로 '수업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을까? 내가 가르치는 상반 보충수업의 아이들에게 학원에 다니고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놀랍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하지 않는 선행 학습이나 부족한 심화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을 뿐 학교 수업을 우선시하는 공통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외나 학원 보충 시간이 바뀌어서 보충수업을 빼 달라는 학생들도 있고 시험기간에는 학원에서 해당 과목 총정리를 해준다는 이유로 자율학습 불참을 통보하는 학생들도 있다. 부족한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에 더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지도했던 학급의 한 학생은 수능 만점을 받았었는데, 그 학생은 꽤 오랜 기간 주요 과목 학원에 다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수업 동안에는 늘 앞자리에 앉아서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었다. 중요한 것은 학원에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가 아니라, 학교 공부를 우선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인 것이다.
상위권 학생들을 가르치고 상담하다 보면 그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공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때로는 주저앉아 울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런 힘든 자신만의 싸움 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서이다.
마더 테레사는 “신은 우리가 성공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매일 노력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종종 넘어지는 시행착오 속에서도 그러한 행동을 ‘슬럼프'’라고 부르지 않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