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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Oct 21. 2024

우리는 괜찮은 어른인가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모습 그대로 자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아이들이 자라길 원하는 모습 그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데이비드 블라이-    



                

  얼마 전 교실 조회가 끝나자마자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등교한 아이의 상태를 묻기에, 평소와 별 차이를 못 느꼈다고 말하면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사실, 오늘 아침에 아이랑 엄청 다퉜어요. 시험이 코앞인데 아이가 공부 계획을 전혀 지키고 있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현관문 열고 나가는 아이한테 그럴 거면 아예 집을 나가서 혼자 살라고 말하면서 정리하고 있던 빨래를 아이한테 집어던졌어요. 중학교 때까지 엄마 말에 반항 한번 안 하던 애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요.”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노규식 박사는 ‘공부는 감정이다’라는 책을 통해 점점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부모의 말에 반항하거나 격하게 반응하는 아이에게 ‘얘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애가 화가 나서 엄마, 아빠를 공격하고 싶구나’ 정도로만 마음을 읽어 주라고 조언한다. 물론 아이가 부모에게 대들거나 심하게 공격적으로 나오면 그 상황을 차분하게 대응하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부모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아이는 반항심이 더 커져서 부모가 원하는 것을 일부러 더 안 하려고 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진 아이는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더 심한 문제행동을 하기도 하며, 좀 내성적인 아이의 경우에는 집과 학교 그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활동에 무기력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따라서 부모는 자신의 감정적인 표현을 자제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날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아이가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개인적인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보충수업이 거의 끝나가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너희들은 부모님이 어떻게 했을 때가 가장 참기 어렵니?”

 예상했듯이, ‘공부하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이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게 너무 싫다고 말했다.

“공부하고 있으면 간식 같은 거 주러 들어오시는데 그게 싫어요. 빨래할 거 있냐고 물어보러 들어오는 것도요.”     

 그러면 도대체 부모님이 언제 방에 들어가면 되겠냐고 물어보니, 그냥 아예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보충수업은 영어 상위권 아이들로 이루어진 수준별 수업이었기에 대답한 아이들 대부분이 성적이 높고 학업 태도도 우수했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모님과 의논한다고 대답할 정도로 부모와의 관계도 좋은 아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에 부모님이 들어오는 게 너무 싫다는 아이들의 대답은 정말로 의외였다.      


  “우리 집 거실에는 커다란 책상이 있어요. 공부하려면 거실에서 해야 하는데, 엄마가 소파에 앉아 신문 보고 있는 것도 싫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 좁은 컴퓨터 책상에서 공부해요.”

 “저는 동생이랑 방을 같이 써요. 그래서 엄마가 동생한테 볼일이 있어서 종종 들어오시는데 불편해요. 제 공간이 전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쉬고 싶을 때는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에 가요. 방보다 화장실에서 핸드폰 하는 게 더 편해요.”     

  부모가 좋은 의도로 했던 행동들조차도 아이들은 사생활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심한 경우에는 부모가 자신을 감시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아이의 방에 노크를 하지 않고 들어가거나 아이에게 미리 물어보지 않고 가족 스케줄을 세우는 것조차도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부모님이 어떻게 해줄 때 가장 좋냐고 물어보니, “집에 없을 때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답하자 나는 순간 욱해서,

 “이놈의 자식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키워줬는데! 인제 와서 부모님 없이 혼자서 잘 클 수 있다는 뜻이야?”

 라고 장난스럽게, 하지만 진심을 다해 물었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그냥 엄마 아빠가 일 열심히 하는 게 좋아요. 좀 뿌듯하달까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요. 물론 저 혼자 집에 있을 때 더 자유롭고 좋긴 하죠.”

  

   아이 셋을 사교육 없이 서울대에 보낸 것으로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보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부모의 모습이 자녀에게 얼마나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책을 보면 저자가 대학원 시절에 집에서 열심히 자신의 공부를 했더니 아들 셋다 자기 주변에 책을 들고 와서 공부를 했었다고 한다. 둘째 아들인 가수 이적은 비 오는 날 자신의 엄마가 한 번도 우산을 들고 데리러 온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 엄마가 바쁜가 보다’라는 생각에 서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우산 없이 물놀이를 하면서 집에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열정적인 삶을 사는 부모를 본 아이들은 그 모습 그대로를 보고 배운다. 나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학교 복직을 앞둔 후배들이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일을 시작하려니 힘들어.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말을 할 때마다 “교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네 일과 삶을 사랑한다면 좋은 부모가 되는 거야”라고 말하곤 한다. 아침 출근 전에 힘찬 목소리로 “회사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기보다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힘들지만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하나씩 쌓여서 아이에게 긍정적인 부모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 역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되며,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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