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마법이 필요하진 않다.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조앤 롤링-
민태를 2학년 교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일 년 내내 민태에 대한 첫인상은 변함이 없었다.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고, 청소 시간조차 자기가 맡은 구역을 재빨리 해치운 다음에 바로 자기 자리로 후다닥 가서 다시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아서 조금 안타깝다고 느끼곤 했었다.
3학년 때 다시 민태의 담임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아이의 눈에 띄는 변화를 조금씩 목격하게 되었다. 먼저 성적이 갑자기 올랐다. 작년에 모의고사 평균이 5등급 대였는데 3월 학평 결과에서 바로 평균 3등급 대를 찍었다. 민태 역시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드디어 뭔가 이뤘다는 만족스러운 눈빛을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변화는 학급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민태 주변에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는 점이다. 과목별 수행평가 직후나 내신 고사 이후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 보면 민태 주변에 몇몇 아이들이 모여 서로 답을 확인하거나 어려운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민태와 상담을 하면서 그동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계속 응원해 왔다고 말했더니 이렇게 답했다.
“2학년 때는 솔직히 혼자 공부했어요. 1학년 때 친했던 애들은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거든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았어요.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어떤 과목들은 수업 시간 속도가 너무 빨라 쫓아갈 수도 없었어요. 아니, 제가 느렸던 거였죠. 그런데 겨울방학 때 정말 미친 듯이 모의고사를 풀면서 공부하다 보니까 뭔가 좀 알 것 같은 거예요. 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이런 거요 3학년 올라와서 성적까지 오르니까 솔직히 기분 너무 좋죠. 특히 공부를 잘하면서 저랑 성격도 잘 맞는 애들이랑 자연스럽게 친해진 게 너무 좋아요.”
실제로 학교에서는 민태 같은 학생들이 정말 많다. 그런 아이들과 상담하다 보면 자신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뭔가 열심히 했을 때 결과가 좋아야 계속하고 싶은데 자신은 아무리 해도 왠지 수능 전까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언제부터 공부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초등학교 때 같다고 말한다. 열 살 전후, 아니면 그 이전부터 꾸준히 공부해 온 아이들과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이제 시작하려는 아이들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며칠 전 첫째 아이에게 과학 동화책을 읽어 주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과정에 관해 알려주고 있었는데, 번데기 속에서 애벌레가 천천히 나비로 ‘변화’하는 게 아니라 애벌레가 아예 액체처럼 완전히 녹은 다음에 나비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공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하는 성적을 얻고 싶으면 그동안 자신이 해 왔던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학습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당장 결과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겠지만 이렇게 지루한 노력의 과정이 없다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조금씩 뭔가 아는 것 같고 성적도 오르게 되면 비로소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친구들과 어려운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단지 이런 순간을 직접 느끼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