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부는 노력인가, 아니면 재능인가

모두가 1등은 될 수 없는 교실에서

by 유타쌤



“선생님, 이번에도 3등급이에요. 저는 진짜 열심히 했는데...”
표정을 잃은 채 조용히 성적표를 내밀던 민서가 말했다. 수업시간에도 늘 집중했고, 거의 매일 야간자율학습실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으며, 주말에도 감독을 하러 가보면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공부하던 아이였다. 교사가 보기엔 누구보다 간절하게, 누구보다 성실하게 노력했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이번 모의고사에서도 결국 영어 3등급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같은 반의 윤제는 올해 학교 수업에서 영어 과목을 선택하지 않았다. 고3 내내 수업시간에 윤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윤제는 이번에도 영어 모의고사 1등급이었다. 물론 학원에서 따로 공부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철저하게 준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학생의 상황을 동시에 지켜보는 교사로서,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씁쓸함이 가슴 한편에 맴돌았다.


나는 어떤 과목은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부도 분명 재능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공부를 재능이 아닌 노력의 문제로만 여긴다. 성적이 낮으면 “노력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야 한다며 쉽게 말하고, 원인을 아이의 태도에서만 찾는다.


입시를 겪는 학생들 곁에서 오래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교사의 언어마저 점수 중심으로 변해버린다. “이번에 성적 잘 나왔네. 열심히 했구나.”라는 말은 듣는 이에게 ‘결과가 좋아야 노력도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반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은 아이에게는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래도 다음엔 잘 될 거야”라던가 “지금의 과정이 나중에 도움이 될 거야”같은 위로하려는 말들이 때로는 공허하게 느껴진다. 교사인 나조차 그 말이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결과’만을 중심에 두게 만든다. 열심히 했는데도 점수가 오르지 않으면 “내가 문제인 건가?”라며 스스로를 탓한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젠 노력도 재능 같아요. 저는 노력할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교무실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성적은 이제 아이들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존재의 가치에 대한 평가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시험은 단지 한순간을 평가하는 도구일 뿐이다. 누군가는 긴장에 약하고, 누군가는 사소한 실수 하나로 흐름을 놓친다.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천천히 오르는 유형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학교는 결국 시험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만다.


그래서일까. 나는 점점 더 자문하게 된다. ‘정말 교육이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은 걸까?’ 우리는 아이들의 성적표에 찍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이는 누구보다 친구를 잘 챙기고, 어떤 아이는 발표는 서툴지만 팀 프로젝트에선 놀라운 조율 능력을 보여준다. 교사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입시에서 점수로는 환산되지 않는 가치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꾸준히 공부를 이어가는 학생,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학생, 눈에 띄지 않아도 자기만의 페이스로 조금씩 나아가는 학생 말이다.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지만, 모두가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은 어린 10대 아이들에게 “너는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조건 없이 건네는 일인지도 모른다.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비록 모두가 1등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존중받는 교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도 학교에 남아 묵묵히 공부하고 있는 민서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고 있는 너의 모습에서, 여전히 무너지지 않은 의지를 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처럼 흔들림 없이 걸어온 그 시간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길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점수가 나를 고르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