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순간, 나는 움직인다.
나는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안정적인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그 길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고, 그 질문은 점점 커졌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했던 영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영어교사를 직업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시간과 돈, 그리고 용기를 모두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병행하며 영어교육과 진학을 준비했다. 퇴근 후 책을 펼쳤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공부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또렷하다. 안도감과 기대,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등록금과 생활비로 사용해야 했기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과외를 계속했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갔지만, 그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사립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교사가 된 이후의 삶은 바쁘고 치열했다. 수업 준비, 학생 상담, 내가 맡은 행정 업무(첫 해에는 초과근무 업무를 담당했다)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특히 고3 담임을 맡았던 시기는 말 그대로 전력질주였다. 학생들의 입시를 함께 고민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잡게 하며, 나 역시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때의 나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저 눈앞의 일들을 해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 수능이 끝났다. 학교에는 여전히 출근했지만,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그 여유가 낯설면서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 선생님은 방금 왜 그렇게 말한 걸까? 혹시 내 행동이 기분 나빴던 걸까?', '우리 반 A 학생은 나한테 정시 상담하고 정한 학과를 왜 다른 선생님하고 상담하자마자 바꾼 걸까? 내 상담 실력이 부족했던 걸까?'
그때와 비슷한 일은 결혼 후에도 있었다. 육아휴직을 하다가 복직을 하기 두세 달 전에 첫째를 오전에만 미리 어린이집에 맡긴 때가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시간이 생겨서 처음에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무도 없는 집, 조용한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나는 특히 바닥에 누워서 공기 중의 작은 먼지들이 햇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니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걸 좋아했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달라졌다. 조용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얼마 전 만났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고 사소했던 나의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 나를 무시한 것이었을까?,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복직 이후의 모습도 계속 머릿속에 그려졌다. 젊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육아와 집안일은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예전에는 퇴근 후 아이 목욕을 시켜주겠다고 말하는 남편이 고맙고 안쓰럽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겨우 목욕밖에 안 시킨다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생각이 변해 있었다.
바쁠 때는 괜찮았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는 이런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그 빈 공간을 생각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대부분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할 때는 문제가 된다. 이미 지나간 말과 행동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후회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일은 결국 현재의 나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여유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때는 다시 움직여야 한다. 작게라도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몸을 움직이거나, 나를 현재에 붙잡아 두는 일을 해야 한다.
생각은 통제하지 않으면 끝없이 커진다. 그러나 행동은 생각을 잠재운다. 바쁨이 늘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움직임은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 나는 그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지금도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생각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다시 움직인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시작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삶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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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써온 작가의 다른 글들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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