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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Nov 26. 2020

누가 ㅋㅋㅋ하면 나는 ㅎㅎㅎ로

오늘의 좋은 말씀을 보내줘서 고맙긴 하지만...

"아니, 교사 동아리 단톡방에 올라온 ㅋㅋㅋ라는 말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거야?"

교사 모임으로 알게 된 50대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셨다. 어떤 글에 ㅋㅋㅋ라는 댓글이 달렸는지 여쭈어보았더니, 핸드폰을 직접 꺼내 그동안 자신이 올렸던 글들을 보여주셨다. 20대부터 50대 후반으로 이루어진 학교 교과 단톡방이었는데, 선생님은 거의 매일 좋은 글귀나 재미있는 짤들을 단톡방에 올리고 있었다. 

"좋은 글 감사하다고 하던가 뭐,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또래 친구도 아니고 엄연히 선배인데, ㅋㅋㅋ라고 하는 것은 좀 그렇잖아."

나는 친구한테도 아니고 선생님들 단톡방에 그런 건 올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아, 그러셨어요?"라는 공감 없는 맞장구만 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갖게 된 나의 아버지는 그 작고 신비로운 친구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집에만 가면 늘 켜져 있던 티브이 뉴스가 이제는 스마트폰 작은 화면 속에서 재잘거리더니 어느새 아버지는 정치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까지 섭렵하셨다. 젊은 시절 살았던 장소를 구글맵으로 찾아서 캡처한 뒤 가족 단톡방에 올리시는가 싶더니 한동안은 또 반짝이는 효과음이 나는 '오늘의 좋은 한 마디'같은 이미지를 올리시기도 하셨다. 언제부턴가 단톡방 속에 아버지가 너무 조용하셔서 왜 이제는 좋은 글 같은 거 안 올려 주시냐고 여쭈어 보자, "니들이 대꾸도 안 했잖아!"라고 말씀하시며 섭섭함을 드러내셨다. 자식들은 '아, 오늘도 또 뭔가 보내셨구나!' 하면서 읽는 것 조차 하지 않았지만 막상 뭔가를 올린 아버지는 단톡방 속 가족들이 어떻게 대답할 지에 대한 반응을 기대하고 계셨던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무리 어디서 긁어 온 글이나 이미지라 하더라도 이걸 올린 사람은 누군가가 읽고 대답하기를 기대했고, 그걸 본 사람은 '또 복붙 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종종 쓰는 'ㅋㅋㅋ'를 보냈지만 그건 애들끼리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우리 꼰대들은 '이게 무슨 예의 없는 대답이냐!'라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속에서 열을 삭힐 뿐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친한 선생님이 최근 교장실에 불려 갔다 왔다면서,

"담임이면 적어도 8시 정도까지는 학교에 남아서 아이들 상담도 하면서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이미 상담을 하고 있고 종례한 뒤에는 저도 운동도 하고 제 시간을 즐겨도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담임이라고 당연히 그 시간까지 교무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나 역시 오래전 신입교사 시절에 저녁 8-9시까지 교무실에 남아 '언제쯤 집에 갈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그래야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빈 시간을 활용해서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한 뒤, 퇴근시간이 되면 당연히 내 일은 끝난 것이다. 할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킬 것을 강요하면서 '우리 때는 0교시도 있었고 토요일에도 와서 수업도 했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백 퍼센트 꼰대입니다'라고 자랑하는 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단톡방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일하는 시간에는 관련된 내용을 올려야 하고 업무 시간이 끝나면 단톡방 근처에도 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내 딴에는 좋은 글귀 거나 도움이 되는 정보라고 올렸겠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업무의 연장선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려야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맘껏 올리시라. 단, 내 메시지에 대해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같은 답장은 기대하지 말길 바란다. 또한 나보다 한참 어린 누군가가 ㅋㅋㅋ라고 해도 당황해하거나 화낼 필요가 없다. ㅋㅋㅋ라는 말에는 ㅎㅎㅎ라고 답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물론 어른이 메세지를 보냈을 때 ㅋㅋㅋ라고 답을 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네가 아는 거라곤

                                                    네가 다 아는 줄 아는 것뿐이다.

                                                     -코미디언 겸 방송작가, 유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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