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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Apr 22. 2022

너의 결점은 나의 즐거움

숨겨봤자 숨겨지지 않는것

" 올해는 절대 연구수업 같은 거 안 할 거야."


  일정 연수 때 알게 된 친한 선생님이 며칠 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선생님들끼리 학습 동아리를 만들어서 번갈아 연구수업을 하고 서로 이야기해주는데 진짜 기분이 너무 안 좋았었어. 고등학교에서 수업 준비하고 담임도 하면서 연구 수업까지 준비하느라 진짜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서 00 선배 선생님이 나한테 치마가 너무 짧았다, 향수 냄새가 너무 강해서 집중이 어려웠다, 뭐 이런 수업과 관련 없는 말만 하시는 거 있지? 근데 나 그날 치마가 무릎 정도 길이였어. 향수는 또 무슨! 손에 핸드크림 바른 게 다거든?  아니, 그 냄새가 교실 뒷자리까지 날 정도도 아니고 마스크도 쓴 상태였는데 말이야! 같은 과 선배 선생님이신데 내가 뭐만 하면 너무 나서는 거 보기 좋지 않다고 조언하듯이 날 깎아 내리면서 좀 귀찮겠다 싶은 일은 무조건 나한테 시켜. 그래서 올해는 절대 교사 동아리 안 할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불현듯 예전에 내가 겪은 일이 생각났다. 

나는 원래 더위를 잘 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땀이(그것도 겨드랑이에...) 너무 잘 나는 편이어서 5월 정도부터 수업하는 교실에 미니 선풍기를 가지고 다녔다. 말이 미니이지, 사실은 내 머리 크기만 한 선풍기여서 그것을 들고 교실로 가는 모습을 보는 선생님들마다 다들 벌써 덥냐며 웃으시곤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반 반장과 부반장이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앞으로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 수업 전에 저희가 번갈아 가면서 선생님 선풍기를 교실로 갖다 놓으면 안 될까요?"

내 눈치를 보면서 말하길래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냐고 말했다.

"사실은 국사 선생님이 저희 반에 수업 때마다 오셔서 담임선생님 선풍기 들고 다니는 것 가지고 자꾸 좀.... 그러니까 별로 좋게 이야기하지는 않으셔서... 아니, 선풍기 들고 다니는 게 전혀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닌데 교실에 오셔서 담임 선생님 이야기하시는 게 저희는 싫어서요. 그래서 저희가 들어드리려고요."

그 이후 나는 에코백에 선풍기를 넣어 들고 다녔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내 목이 항상 쉬어 있는 걸 보신 친한 선배 선생님께서 학교에 비치된 교사용 작은 마이크를 가져다주셨는데 이번엔 그게 문제였다.


"하여간 저 선생님은 왜 저러는 거야? 마이크 때문에 여기까지 소리가 울려서 내가 수업을 할 수가 없잖아!"

라고 다른 반 교실에서 뿐만 아니라 교무실에서 내가 자리에 없을 때도 말하셨다는 게 아닌가.

당연히 다른 반 아이들이 내게 왔고, 나와 친한 선생님들도 이런 일이 있었다며 조심하라고 나에게 일러 주었다. 나는 그 선생님과 과목도 다를 뿐만 아니라 업무도 달라서 전혀 부딪힐 꺼리가 없었다. 게다가 마이크를 사용하는 선생님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 몰라서 동기 선생님을 데리고 옆 반에 있으라고 한 뒤 내 마이크 소리가 어느 정도인지 들어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기 선생님은 걱정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선생님 원래 저러시잖아.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결점이라고 생각되면 그걸 아무데서나 말하고 다니는 게 삶의 낙이 신 분인데 너무 신경 쓰지 마."


예전에 어떤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장 쉬운 것이 남의 단점을 말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단점을 고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았다.

가장 어렵다는 것을 고치려고 하지도 않은 채 가장 쉬운 것을 하지는 않았던가? 

혹시 내가 누군가에 대해 한 말 때문에 그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인디언 명언에 '원래 귀는 닫도록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입은 언제나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값 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내 의지로 열고 닫을 수 있는 게 입이라면, 오늘 하루만은 닫는 연습을 해 보고 싶다.


  물론 맛있는 걸 먹을 때는 빼고 말이다.



                                                   타인의 결점은 우리들의 눈 앞에 있고

                                             우리들 자신의 결점은 우리의 등 뒤에 있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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