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Oct 31. 2020

열등감을 호주머니에 구겨 넣기

그리고 꺼내지 않고 세탁해 버리면 없어지는 걸까


  신은 공평하다. 나에게 적당한 키와 보통 수준의(?) 얼굴을 준 대신에 축구선수 못지않은 종아리 근육도 함께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이힐을 잘 신지 않는다.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우람한 내 종아리 알을 바라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사실, 남들은 내 종아리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테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면 인생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그런데 몇 년 전, 학교의 미국인 영어 선생님이 내 종아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여자가 종아리에 근육이 있으면 섹시하다나 뭐라나. 나는 차마 한국에서는 종아리 근육을 없애는 수술이 있을 정도로 여성의 종아리 알은 인기가 없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칭찬으로 내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거나 내 종아리 알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다거나 하는 심경의 변화를 겪지는 못했는데, 별 다른 일이 없는 한 나는 한국에서 계속 살 것이고 여전히 탄탄한 종아리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 명희는 아침마다 샤워할 때 빠지는 머리카락에 굉장히 민감해한다. 머리숱이 엄청나게 적기 때문이다. 내가 “야, 뭐 그런 거 가지고 고민하냐?”라고 말하자, 명희는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움켜쥐더니 나를 보여주었다. 다 잡아도 내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친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명희와 저녁을 먹던 어느 날이었다. 내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던 친구는,

"너는 이 시간에도 머리카락 사이로 귀가 보이지는 않는구나."

라고 말했다. 

"귀가 머리카락에, 뭐? 무슨 말이야?"

내가 묻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보통 저녁시간쯤 되면 머리카락에 기름이 끼잖아. 나는 안 그래도 머리숱이 적은데 기름까지 끼면 얇고 갈라진 머리카락 사이로 귀가 슬쩍 보이거든. 근데 너의 엄청난 머리카락들은 아직도 푸석푸석하구나. 진짜 부럽다."

아직 미혼인 명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결혼 상대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은 바로 풍성한 머리카락이라고 강조하면서 ,

"내 자식들에게 나의 컴플렉스를 물려주고 싶진 않아!"

라고 소리쳤다. 나는 '친구야, 내 자식들이 아빠가 아닌 엄마를 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라고 말할까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않았다. 단지 나에게 부러움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슬쩍 넘기면서,

"으, 머리 아파! 너 머리숱 많아서 가끔 두통 오는 거 모르지?"

라며 약을 올릴 뿐이다. 


  나의 언니는 키가 작다. 168센티미터인 나를 볼 때마다 종종 "나한테 5센티미터만 줄 것이지!"가 한때 그녀의 레퍼토리였다. 언니가 고등학생 때였던가. 집으로 언니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었다. 그 당시 언니가 다니는 학교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다니는 곳이었는데 언니가 매일같이 학생이 신으면 안 되는 높은 구두에 바닥에 있는 온갖 먼지를 질질 끌고도 남을 정도로 긴 청바지를 입고 다니니 집에서 못하게 좀 해달라는 전화였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선생님. 아이들 지도하느라 많이 힘드시지요? 사실 제 딸은 자기가 곧 키가 클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그래서 청바지를 사고도 절대 자기 키에 맞게 길이 수선을 하지 않아요. 곧 클 건데 왜 자르냐고 대답하면서요. 그래서 긴 청바지를 입고 다니려면 어쩔 수 없이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 같아요. 주변에선 다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제가 엄마인데 저라도 믿어 줘야죠. 하지만 학교에서는 못하도록 지도할게요."


  현재 두 아이를 둔 엄마인 언니의 키는 여전히 작다. 하지만 180센티미터가 넘는 형부의 우월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두 조카들은 또래들에 비해 큰 키를 자랑한다. 

 "네가 어릴 때 내 간식 많이 뺏어 먹어서 내 키 다 가져간 거야!"

언니가 여전히 독설을 내뱉을 때면 나는,

"자, 생각해 봐. 언니가 키가 크고 애들이 작은 게 좋아, 아님 언니가 작지만 애들이 큰 게 좋아? 당연히 후자가 좋겠지? 세상은 공평한데 언니는 진짜 복 받은 줄 알아."

라고 은근슬쩍 언니 기분을 추켜세워준다. 

"흡. 그렇긴 하지."

라고 말하는 언니는 여전히 키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이힐을 고수하고 있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일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컴플렉스라는게 무섭거든요. 스스로에게 집중해서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내 열등감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박살을 냈으면 좋겠어요. 열등감을 떨쳐내야 스스로 망가지지 않거든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거북이는 왜 토끼와 경주한다고 했을까요? 거북이는 컴플렉스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것일 뿐, 느리다는 열등감이 없기 때문에 승패와 상관없이 거북이는 경기에 임할 수 있었을 거예요."


  나는 아직도 밤마다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는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길을 가다가 군살 없이 늘씬한 종아리를 가진 여자를 볼 때마다 '아, 종아리 근육 퇴축술 수술이 얼마였더라?'라는 생각을 한다. 하나에 삼 만원이 넘는 비싼 압박 스타킹을 신으며 약간은 늘씬한 종아리를 가진 여자인 척도 해 보다가 집에 돌아오면 '이놈의 근육들, 어디 안 가나?' 하면서 종아리 마사지 기계에 다리를 다시 욱여넣는다. 


  나의 컴플렉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토끼와의 경주를 즐길 수 있었던 거북이와 나는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종아리에 대한 열등감을 마치 음식점에서 받은 카드 영수증처럼 구겨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을 수는 있다. 물론 집에 오면 슬며시 꺼내 보며 '이 정도면 뭐, 괜찮지'라고 생각했다가, 또 어떤 날에는 내가 아닌 남동생한테 쭉 뻗은 종아리가 몰빵 된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뭐 어쩌겠는가.

나는 거북이가 아닌 인간인걸...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










이전 11화 너의 결점은 나의 즐거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