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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Aug 29. 2023

혼자 있어도 괜찮아

모두와 친구일 필요는 없다

 한 달 동안 어디에 얼마를 지출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카드 명세서를 이메일로만 받아서 딱히 열어보지 않았는데 이번달에 생각지도 못한 큰 금액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문자메시지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금액이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 속에서 명세서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내가 카페에 돈을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카페를 가는 목적은 커피나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아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바로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야 할 정도의 민감한 소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집 냉장고에도 내가 직접 만들었거나 아니면 선물로 받은 수제청이 잔뜩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카페에 가는 것인가. 바로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학교 동료들과, 친구들과, 그리고 동네 아이 엄마들과 카페에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안 갈게'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도 하거니와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때 혹시 모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은 감기 때문에 엄마들과의 카페 모임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날 모임 중 한 명의 집에서 아이들과 모두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웃으면서 "어머, 재미있었겠다!"라고 말했지만 그날의 저녁식사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일부러 나만 뺀 건 아닐 거야. 내가 감기 때문에 아팠으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닥으로 내려간 기분을 위로 팍팍 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동글동글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뾰족뾰족한 마음을 숨기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지난번 모임 사람들과 카페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했어?"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늘 하던 학교 이야기나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는 날짜와 내용만 다를 뿐 다 고만고만한 에피소드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일부러 외곽에 있는 분위기 좋은(하지만 비싼)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다들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정작 만나서 서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카페에 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기분전환을 위한 목적으로, 혹은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카페에 가서 내 돈 주고 사 먹는 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내 '마음'이다. 그동안 카페에서 이렇게나 많은 돈을 써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과연 그 속에서 스스로에게 가치있음을 느꼈던가'라는 질문이 끈적하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카페를 가자는 사람은 주로 타인이었고 나는 그저 "좋아요!"라고 외치며 따라가곤 했다. 카페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정말?"이라는 공감의 표현을 하면서 '그래!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야'라는 뿌듯함을 느껴졌지만 사실은, 이제 집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말을 언제 해야 할지 눈치를 보곤 했다. 그렇다! 나는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던 것이다! 마치 내 모습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는 운치 있고 멋지기라도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 속에 "그런데 내가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녀가 나에게 한 행동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표정 한번 구기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라는 문장은 그동안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다내 기분이 우울했던 이유는 카페에서 돈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타인의 말들에 제대로 꿈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내 감정을 소중히 여겨야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할 텐데, 나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지 못한 채 타인의 행동이나 말에 표정 한번 구기지 않았던 내 과거의 모습은 정말이지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하나'정도였던 것 같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만'이라는 책에서 박한평 작가는 건강한 거절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보통 인간관계가 끝날까 봐 거절을 하지 못하지만 진심을 다한 거절은 관계를 오히려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물론 착하게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없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인생에 당신이 없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으니까..."


 나는 이제부터라도 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물론 한 번의 노력만으로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너무 맞추느라 정작 나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또한 앞으로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벗어나보려고 한다. 무리에 속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없기에, 나는 오늘부터 나 자신과 더욱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싶다.



인생은 긴 선로 위의 열차 같아서, 내릴 사람은 내리고 탈 사람은 타고 종점까지 갈 사람은 가게 되어있다. 

안달해 봐도 안 되는 게 인연.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 것.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것. 

그래도 슬플 때는 힘차게 달릴 것. 

다음 정류장으로.


-정영욱 작가의 '편지할게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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