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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Nov 13. 2020

NO라고 말하기 연습

거절의 순간에는 그냥 거절하면 된다

  주말에 만나기로 했었던 친구로부터 약속을 미룰 수 있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유인 즉, 회사 동기가 지금 맡고 있는 일을 버거워해서 주말에 혹시 나와서 도와줄 수 있냐는 부탁에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나랑 먼저 약속한 거 아니냐고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나 원래 누가 부탁하면 거절 잘 못하잖아."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올 초에 내가 했던 행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학 동기이자 친한 동생이(나는 대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동기들이 다 동생들이다) 이번에 생활기록부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다며 나에게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기록부 기재 관련 강의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업무에 익숙했기 때문에 동생이 보내 준 파워포인트 강의 자료를 보면서 수정할 부분이나 추가할 사항 등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그냥 언니가 고쳐주면 안 될까? 언니가 훨씬 잘하니까!"

라고 부탁하는 게 아닌가. 나는 동생의 훅~치고 들어오는 갑작스러운 부탁에 어버버... 하면서 결국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강의 자료를 수정하느니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하에 완전히 새로운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동생에게 갖다 바치기까지 했다. 겉으로는 어려움에 처한 동생의 부탁을 들어주는 멋진 선배의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랬지만, '혹시 내가 만만해 보였던 걸까?', '왜 나는 그때 No라고 거절하지 못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바보 같은 내 모습에 헛헛한 웃음만 나왔다. 


  '때론 이유 없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의 저자 다카미 아야는 책 속에서 '일단은 내가 먼저 행복해지는 게 중요하다. 주위 사람은 그다음 순위다. 이렇게 살아야 일상이 즐겁고 인간관계도 순조롭다'라고 말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그 선을 넘어섰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기 신뢰감이 낮아서 부탁하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말이긴 하지만, 꼭 자기 신뢰감이 낮아서 영역을 침범당한다고만 볼 수는 없다. 무엇이든 쉽게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교사 모임을 통해 친해진 선생님이 있었다. 어느 날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내가 학교 끝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볼 거라고 하자, 자신도 마트에 가야 한다면서 사야 할 리스트를 보내줄 테니 대신 사다가 오는 길에 들러서 주고 갈 수 있냐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전화상으로였다면 너무 당황했겠지만 다행히 메시지로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두 아이들과 같이 마트를 갔다가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선생님 장도 봐서 집까지 가져다주는 건 어려울 거 같다'라는 나름 침착한 거절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나는 그 선생님과 모임 때문에만 연락을 하였고 일부러 안부를 묻는 등의 연락은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모임에 있는 선배님과 모임에 쓸 책을 고르던 중에 우연히 그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선생님이 간식 담당이잖아. 그런데 자기가 시간이 없어서 주문한 간식을 가지러 갔다 올 수 없다면서 나보고 모임에 오는 길에 간식을 갖고 와 줄 수 있냐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가게에 전화해서 퀵 비 낼 테니 간식을 모임 장소로 보내달라고 하라고 말이야. 이 선생님 한 두 번이 아니야. 무슨 일만 있으면 부탁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야. 그냥 부탁이 몸에 밴 사람 같아."


  무슨 일을 할 때, 잘 모르거나 혼자서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부탁을 하는 것이 맞다. 혼자 하다가 일이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부탁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부탁을 듣고 '이 부탁 안 들어주면 상대방에게 미안해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앞서 언급했던 책에 따르면 '거절의 힘'에는 네 가지 요소, 즉 '건전한 영역 의식 갖기', '자기 신뢰감 쌓기', '무의식 속 죄책감 없애기', '자신의 힘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위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면서 남들의 시선이나 관심, 기대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고 선택적으로 행동해야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자기 신뢰감이 쌓여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거절했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 아닐까'같은 걱정이나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영역을 남에 의해 쉽게 침범당하게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너무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지식나눔 콘서트'에 가서 김난도 교수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저는 남들이 부탁을 하면 거절을 잘 못합니다. 거절을 잘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김난도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너무나 간단히, 하지만 핵심을 짚어서 대답했다.

"음, 거절을 잘하는 방법은 그냥 거절하면 되는 겁니다. '내가 지금 이런 이런 상황이라서...'라는 이유를 댈 필요도 없어요. 그냥 '아, 그건 어렵겠어요.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영국의 작가인 아서 헬프스는 '명심하라. 거절하면서 이유를 둘러대면 훗날 또 다른 부탁의 빌미가 된다'라고 말했다. 김토끼라는 필명으로 토끼툰을 그리며 여러 권의 책을 낸 김민진 작가는 '거절이 필요한 순간에는 거절을 하세요. 1을 주었을 때 1을 당연하게 받는 사람에게 우리가 굳이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요'라고 언급했다. 로랑 구넬의 소설 '신은 익명으로 여행한다' 속에는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더 나아가 그들의 습관을 계속 지켜주기 위해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쓴다고 생각해보게. 그건 그들이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은 요구를 하게끔 부추기는 거야."



  오늘부터 나는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크게 숨을 쉬고 자신감 있게, 하지만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면서 말하는 거다.

"아, 그건 어렵겠어요. 미안합니다."




                                                               만일 당신이 

                                                   사람들의 인정을 위해 산다면 

                                                                 당신은 

                                             그들의 거절로부터 죽게 될 것이다.

                                                                  -Motivation APP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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