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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Nov 02. 2020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 어디 없습니까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어른

  


  예전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지인의 도예 공방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공방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오후쯤 되면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하교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신발주머니로 장난치면서 길을 걷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던 중에, 한 가지 아이들의 공통적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방 바로 앞 골목길은 일방통행이기도 했지만 길 자체가 너무 좁아서 차들이 다니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도로 바닥에는 노란색의 마름모꼴 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표시 안에 뭐라고 써져 있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앞이니 '차 조심'이나 '천천히'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가는 아이들 대부분이 멀쩡한 길을 놔두고 길바닥의 마름모꼴 표시를 밟으며 지나가곤 했다. 노란색의 다이아몬드 모양 위를 발로 밟는 놀이를 하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길을 건널 때면 횡단보도의 흰색 부분만 밟고 지나가면서 '얘들아, 조심해! 흰색 밖으로 나가면 상어한테 잡아 먹힐 거야!'라고 소리치곤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나는 그런 '선 밟기' 놀이를 그만두게 되었을까? 어린아이들만 그렇게 걷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애가 아냐'라고 생각을 하는 동시에 엄마의 화장품과 구두를 동경했던 순간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때 아이들과 집 앞 '방방 놀이터' 단골손님이었다. 대형 트램펄린, 일명 방방 위를 폴짝폴짝 뛰는 건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도 꽤 좋아했었는데, 어린 둘째가 맨 처음 무섭다고 엄마손을 잡고 타고 싶다고 한 이후로 나는 방방의 재미에 푹 빠졌다. 나중에 둘째는 엄마 없이 혼자 타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직 어려서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대면서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폴짝폴짝, 하지만 너무 신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즐기곤 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어떠했던가? 놀이기구 타는 것을 너무 좋아했고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로 학교 근처에 있는 디스코 팡팡에 가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20대에는 패러글라이딩이나 암벽등반같이 스릴 있는 스포츠를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런 것들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친하게 지내는 학교 선생님이 이번에 새로 이사 간 아파트 놀이터가 너무 좋다면서 나와 아이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놀이터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나무 모양의 미끄럼틀은 아이들이 나이대별로 다양한 높이를 선택해서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놀이터를 가로지르는 꽤 긴 길이의 짚라인은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놀이터 가장자리에는 운동기구가 놓여있었는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에 부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선생님과 가볍게 운동을 하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아이의 아빠처럼 보이는 어른이 짚라인을 타는 걸 보았다. 순간 옆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아니, 왜 어른이 저런 걸 타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도 저 짚라인 한번 타볼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서 짚라인 놀이 기구 옆에 붙은 설명 문구도 미리 봤는데 키 120cm 이상 가능하다고만 나와 있고 '어른 금지' 같은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도 탈 수 있고, 허리 돌리기 운동기구만 계속하고 계시는 할머니도 탈 수 있었다. '어른들은 이런 거 하지 않는다'라는 시선과 '어른들이 이런 거 해도 될까'라는 망설임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게 진짜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구대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어른들만의 놀이터가 있으면 어떨까? 나처럼 아직 철이 덜 든 어른들이 모이는 이상한 곳이라는 소문이 돌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떠랴...나는 아직도 신나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젊은 사십대인걸...



              노년의 무성한 백발과 깊은 주름을 보고 그가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백발의 노인은 오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인지도 모른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로마시대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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