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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Jun 02. 2023

부정적인 마음의 전염성

나쁜 기운은 마치 감기처럼 금방 퍼진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확히 스물네 살 때까지 친했던 친구 A가 있었다. 만약 지금도 연락하고 지냈다면 서로의 역사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친구였을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A를 만났을 때는 강남역의 어느 고깃집에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A는 늘 그래왔듯이 고기를 먹는 내내 처음 가진 직장(정확히 말하면 카페 아르바이트였지만)에 대한 불만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해 섭섭한 점 등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 낯선 곳에서 살면서 부딪쳐오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위로도 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A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운이 없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나의 어려움은 그녀에게는 '그까짓 거'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날 A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이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 다짐을 지키고 있다. 가끔씩 같이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를 지나갈 때면 A가 생각나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최근에 이와 비슷한 결심을 한 적이 있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 왔던 대학교 후배 B를 만났었는데 '아, 당분간 만나지는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B는 밝고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거의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나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나와 있을 때마다 남편과 시댁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엄마들 모임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곤 했다. 문제는 B를 만나고 난 후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내 입냄새를 맡고부터 시작되었다. 커피 향이 섞인 지독한 입냄새를 느끼며 나는 B와 만나면서 내가 한 말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커피를 마실 때 빼고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차 안에서 맡은 커피 섞인 나의 입냄새는 불쾌함과 함께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B와 만나는데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아, 그거 전염돼서 그런 거야."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부정적인 마음은 감기처럼 주변 사람을 전염시켜. 그래서 조심해야 해. 내가 봤을 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탓을 하더라고. 남 탓 그리고 자기 탓. 무슨 일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 자기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자기들이 슬픈 영화 속 주인공인 거지. 그런데 솔직히 우리 인생도 힘듬의 연속인데 다른 사람의 어려움까지 봐야 해? 그것도 전염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가끔 보면 돼, 가끔."


 시인 류시화가 엮은 '시로 납치하다'라는 책 속에 레이철 리먼 필드의 '어떤 사람'이라는 시가 있다.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몹시 피곤해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속 생각이 모두 움츠러들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생각이 갑자기 환해져서 

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



  만날 때마다 피곤해지고 내 몸을 바짝 말라버리게 만든 사람이 있다.  반면에 함께 있으면 즐겁고 내 세포 하나하나를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도 분명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늘 밝게 웃고 인사하는 신입 선생님이 있는데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그 밝은 미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같이 웃게 된다. 근데 이걸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다. 

"000 선생님은 얼굴만 봐도 참 기분이 좋아. 웃으면서 인사해서 그런가?"

식사 중에 그 신입 선생님에 대한 선배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이후로 나는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것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닐 수도 있다고 느꼈다. 밝은 얼굴로 인사만 했을 뿐인데도 같이 있는 사람들마저 그 밝은 기운이 전염될 수도 있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면서 밝은 미소로 인사하는 연습을 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생각 자체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는 걸 느꼈다. 밝은 얼굴을 하다 보니 안 좋은 일들조차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삶에 대한 태도 역시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부정적인 마음은 감기처럼 전염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 역시 주변사람들에게 쉽게 퍼진다. 안네 프랑크가 자신의 일기장에 '괴로운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아직 여전히 존재하는 아름다운 일만 생각하자'라고 썼듯이 기분 좋은 일들만 생각하려고 노력해 보자. 그것조차 힘들다면 당장 거울 앞에 서서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인간이 피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바로 미소이고, 그 향기는 쉽게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밝은 마음을 가지면

                                                         밝은 기운이 몰려와

                                                         밝게 나를 비춰준다.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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