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Oct 30. 2020

대화라는 이기적인 단어에 대해서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지 않는가

                                                             


  C를 알게 된 지는 5-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그녀는 내 생일은 물론 남편도 잊곤 하는 결혼기념일도 매년 기억하고 축하해 줄 정도로 나를 잘 챙겨주었다. 나는 C 덕분에 가족이나 연인이 아닌 '친구'로부터 받는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인지를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C와 나는 비밀일기를 교환하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 10대 소녀들처럼 그렇게 서로를 챙겨가며 잘 지냈다. 


  그날은 C와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로 가던 중이었다. 커피 맛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그 카페에 나랑 꼭 가고 싶다는 C의 부탁에 '그러자'라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카페까지는 자동차로 40여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첫째가 유치원에 끝나는 시간까지 집에 돌아오려면 정작 카페에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카페 분위기에 감탄했고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다시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내가 뭘 하고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했냐는 생각을 갖다니... 당연히 좋아하는 친구와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게 아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대화를 나눈 게 아니었다. 그녀는 최근에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의 가족 관계부터 취미, 종교, 심지어는 신발 사이즈까지 언급했다. 내가 한 말이라고는 "아, 진짜?", "그렇구나." 정도의 추임새뿐이었다. C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듣기만 했다. 그녀는 나와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화를 나눈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왔지?'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하자 C와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리던 관계가 순간 탁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내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도 받고 스트레스도 풀고 싶은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한 번은 아예 작정하고 C가 잠시 커피를 마시는 틈을 타 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신나게 학교 축제를 위해 아이들과 어떤 준비를 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C가 "아, 그 말 들으니 생각났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학교 축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못 본 사람처럼 찜찜함을 느꼈고 그녀는 학교 축제에 관련된 이야기에서부터 체육대회, 개교기념일 행사, 교직원 연수까지 언급했고 막판에는 생뚱맞게 시험기간 감독표가 부당한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주제들을 억지로 엮어 이어가는 듯하면서 무려 한 자리에서 두 시간 넘게 '대화'를 이어나간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함으로써 대화의 목적을 완수했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D와는 교사 모임에서 만난 이후로 종종 어울리면서 친해졌다. 처음에는 'D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지만 어느새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받곤 했다. D 역시 어려운 영어 지문에 대한 해석 방법에서부터 가족과 관련된 일까지 나에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주로 휴대폰으로 대화를 했을 뿐 직접 만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D를 만날 때마다 메시지를 그렇게나 자주 주고받았다는 게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색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D는 나와 만날 때면 늘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목을 까딱까딱하면서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핸드폰 화면 위를 쓱쓱 거리며 지난 메시지를 훑어보곤 했다. 우리는 만나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D는 나와 만나는 동안에도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대화 목적을 완수했지만, 나는 상대방이 제대로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진심 어린 공감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가진 대화의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대화란 무엇인가.


  '말하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 각자가 서로에게 향했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의 달성에 관한 과정'이 바로 대화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C가 가진 대화의 목적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고 달성에 성공했지만, C와 동일한 목적을 가진 나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D에게 있어서 대화의 목적은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게 아니라 SNS상에서 메시지를 통해 공감해주고 조언해주는 교류의 과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로 마주 보고 눈빛을 교환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D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누구의 행동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단지 서로가 가진 대화의 목적이 달랐을 뿐인 걸.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다. 

                                                 -레스 기블린(Lesile T. Giblin)-


















이전 07화 화장실, 그 비밀스러운 공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