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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Oct 04. 2022

나이 듦의 냄새

나 역시 냄새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집 앞에 독특한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 밖에 상추며 고추 등이 심어진 화분들(사실 화분도 아니고 김장 담을 때 쓰는 진갈색의 커다란 고무통이다)이 인도까지 점령했기 때문에 그 길을 지나가다 보면 '상추가 싱싱하네', 혹은 '저건 매운 고추일까?'란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 편의점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번갈아 일을 하시는데 카운터 안쪽에서 키우는 흰색 푸들을 편의점 밖으로 데리고 나와 산책을 시키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일부러 그 강아지의 안부가 궁금해서 편의점에 들어간 어느 저녁, 카운터 안쪽에서 강아지와 함께 쪽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가 힘들게 일어나시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는 '내가 일부러 잠을 깨우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저녁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처음 그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묘한 냄새를 맡았다. 반려견을 19살까지 키우고 보낸 경험상 이건 단순히 개 냄새는 아니었다. 나는 이 냄새를 분명히 맡은 적이 있었지만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식사하시는 중에 들어간 적도 있었는데 그 편의점의 냄새가 바닥에 쫙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음식 냄새가 마치 퇴적암처럼 쌓여 있었다. 음식 냄새도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택시에 탔다가 나는 이 냄새를 다시 맡았다. 할아버지가 운전하고 계시는 택시였는데 마스크를 뚫고 느껴지는 익숙한 냄새에 순간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마다 친할머니 댁에 갔었는데 할머니방에서 바로 이 냄새가 났었던 것이다. 

나는 며칠 전 이 냄새를 다시 한번 맡은 적이 있었다. 친정 부모님을 뵈러 오랜만에 집에 들렀는데 아버지께서는 피곤하셨는지 작은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집에 돌아가기 전 아버지 얼굴이라도 보려고 방문을 열자마자 바로 그 냄새가 훅 하고 내 콧구멍을 자극했다.


  그건 바로 나이 듦의 냄새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정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샤워를 매일 하고, 향이 나는 바디 로션을 발라.  속옷도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갈아입어. 주말이나 공휴일에 좀 피곤해서 잠깐 방심해 버리면 그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거 아니? 엄마는 노인 냄새나는 게 무섭다."

 

  집 앞 할머니의 편의점에서, 그리고 나의 아버지에게서 나는 그것을 '나이 듦의 냄새'라고 멋지게 포장했지만 사실 그저 노인 냄새에 불과하다는 것은 참 쓸쓸하다. 나 역시 일이십 년 뒤에 이 냄새에 잠식당해서 나를 아는 어린 세대들이 '아, 노인 냄새난다'라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유명한 소설가인 도리스 레싱은 '모든 노인들이 고백하는 큰 비밀 중 하나는 70세, 80세가 되도록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몸은 변한다'라고 말했다. 1950-60년대를 주름잡았던 미국의 배우 리처드 칼슨은 '당신이 끔찍한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고 싶다면 젊음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면 된다. 늙는 것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면 되는 것이다. 이건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니까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든 저렇든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기 마련이고 이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사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장미 향이 나는 노인이 되고 싶은 것은 그리 큰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젊고 아름다운 사람은 자연이 만든 우연한 산물이지만, 늙고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엘레노어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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