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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친구, 내 맘대로 안된다

by 유타쌤

"드르륵, 드르륵"

자정이 넘은 시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예감에 급히 전화를 받았다.

“최 선생님. 선생님 반에 김진아(가명)라는 학생 있지요? 여기 00 아파트 놀이터인데 남학생이랑 함께 있는 걸 제가 봤고 지금 옆에 있습니다. 학생들 부모님께도 연락드렸고요. 지금 좀 늦었지만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후다닥 옷을 입고 전해 들은 아파트로 향했다. 단지 남학생이랑 늦은 시간에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 시간에 연락이 올 리는 없기 때문이다. 진아는 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조금씩 외모에 신경 쓰면서 수업 태도도 안 좋아지더니 성적 역시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진아의 엄마는 그것 때문에 여러 번 나와 상담을 하면서 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놀이터에 도착해보니 둘이서 교복을 입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말하기도 민망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교감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진아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고 나는 아이를 조용히 불러 훈계한 뒤, 다음 날 학교에서 자세히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차를 타려는 순간 진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쟤가 그 영진(가명)이란 애가 소개해 준 ㅇㅇ고등학교 남자애, 맞지? 왜 자꾸 질 나쁜 영진이랑 어울리면서 이상한 애들 만나고 말썽 일으키는 거야?”


진아 엄마가 말한 ‘질 나쁜’ 영진이 역시 같은 반 학생인데 둘이 어울려 다니면서 진아가 화장도 짙게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진이 때문에 진아가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자꾸 자율학습 쉬는 시간에 가방을 놓고 나가서 몰래 놀다가 돌아오는 진아를 붙잡아 지도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단짝 친구 영진이를 불러 얘기해 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 저 요즘 진아랑 안 놀아요. 처음엔 저한테 잘해주면서 저 어디 가는데 따라다니고 그러면서 제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꾸 제 친구들이랑 개인적으로 연락하면서 제 험담을 하는 거예요. 교실에서도 갑자기 저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애들한테는 자기 엄마가 저를 이상한 애니까 놀지 말라고 했다고 말하고요. 저도 진아 때문에 힘들고 그래서 학교 오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랬었구나. 진작 선생님한테 와서 말해주지 그랬니?”

“지금은 괜찮아요.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 자주 하는데 엄마가 세상 사람들이 저와 같지 않고, 또 그중에는 저한테 상처 주는 사람들도 앞으로 많이 만나게 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런 사람들은 잠시 내 옆을 지나가는 엑스트라일 뿐인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아파할 필요 없으니까요. 영화 속 주인공이 엑스트라한테 신경 쓰는 것 봤냐고 하시면서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셔서 많이 괜찮아졌어요."


영진이와 대화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날 영진이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영진이가 진아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진이의 어머니가 딸에게 해 준 말 때문이었다. 친구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걱정 말라는 든든한 믿음을 심어준 어머니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영진이는 다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조금씩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3이 되어서는 상위권 학생들만 모여 있는 면학반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원하던 학과에 당당히 입학했다. 반면 상위권으로 입학했던 진아는 학년이 바뀔수록 계속 성적이 떨어졌고 반 친구들 간에도 잦은 말썽을 일으켰다. 연고대 정도는 거뜬히 합격할 거라고 기대했던 진아는 결국 지방 사립대에 원하지도 않는 학과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십 대 학생들에게 친구는 학교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친구랑 놀기 위해서 학교에 온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고, 친구관계 때문에 힘들어서 결국 자퇴를 하거나 전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다. 특히 하루 종일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나 여러 가지 감정을 해소할 수 있고, 멘토-멘티가 되어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성적의 압박을 극복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다룰 때 친한 친구를 불러 도움을 요청하면 잘 해결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있어서 친구는 정말로 중요한 존재이다. 따라서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와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보고 ‘그 애랑 놀지 말라’라고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 때문에 정말로 심각한 상황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말고 학교에서 공부에만 전념하면 된다는 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녀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친구랑 어울리면서 그 영향으로 나쁜 행동을 하고 다닌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행실이 어떤지를 아이들의 겉모습만 보고 파악할 수 없을뿐더러 정말로 그런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부모와의 관계가 좋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부모들은 여전히 자신의 아이가 나쁜 물이 들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어떻게든 그런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진아는 계속해서 문제 행동을 일으키고 다니면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진아 엄마는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진아의 행동이 변함이 없자 그 아이들 때문에 이미 자신의 딸이 변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의 부모와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 ‘내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라는 반응을 먼저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는 아이를 지금껏 길러 오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봐 왔지만 담임 선생님은 고작 몇 달 동안 지켜본 게 전부일테니 말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혼자 있는 아이가 있었다. 국어 선생님은 그 아이가 수업 중에 자리에 일어서서 국어책 지문 한 줄을 읽는 것조차 안 하려고 했다며 걱정했다. 학생을 불러 상담을 해 보니,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운데 책을 읽게 되면 그때는 아이들이 자기만 바라볼 테니 너무 창피해서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하고 학교 상담선생님과의 상담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집에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잘하는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했고, 오히려 교실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이라는 익숙한 환경과 달리 학교에서는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다양한 환경과 분위기 속에 처해 있기 때문에 집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부모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와 거리를 두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에 접근해야 한다.



부모가 해야 할 일 첫 번째: 아이와 항상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평일에는 밤늦게 집에 오고 주말에도 학원에 다니느라 바쁜 자녀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간식을 주면서 잠깐 이야기할 수도 있고, 주말에 가족끼리 외식을 하거나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갈 수도 있다. 특히나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부모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한 경우에는 아이가 잠깐 친구들과 어울리며 잘못된 길로 빠진다 하더라도 금세 제 자리로 찾아간다.


엄마 아빠가 자신을 항상 사랑한다는 믿음을 가진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통제력도 높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리 뽑기를 잘 못해서 친하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앉게 되거나, 정말로 문제만 일으키는 아이와 짝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런 친구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끝까지 잘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과 낯선 상황에서도 잘 어울리기까지 한다.


나는 학교에서 생활태도가 좋고 성적도 우수한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성적 상담을 하면서 살며시 부모와의 관계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이런 아이들은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대답했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상관없이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고 했다.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아들을 키우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게 만든 한 남학생은 아직도 자신의 엄마가 학교에 갈 때마다 현관에서 주먹밥을 강제로 입에 넣는다고 불평했지만 누가 봐도 행복한 불평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남학생은 자리 배치를 위한 제비뽑기를 한 결과, 학교 폭력에 가담해서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와 한 달 동안 짝을 한 적이 있었다. 이 학생은 수업 시간에 자신이 아는 것에 답을 했을 때 짝꿍이 “야, 너 또 대답하냐? 선생님. 얘 진짜 재수 없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나 진짜 재수 없냐? 그럼 재수 안 하고 바로 대학 간다는 거지? 으하하”라고 맞받아쳤다. 아침 조회 시간에는 시간표를 살펴보면서 그날 해야 할 숙제를 짝꿍에게 알려주면서 도와주는가 하면, 미술 숙제 제출을 못한 짝을 위해 자기 숙제인 것 마냥 몰래 도와주다가 걸려서 혼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둘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지나가 길래 일부러 둘을 불러 세워 말을 걸었다.

“쌤! 얘가 어제 모의고사 본거 전과목 1등급이라고 자랑하길래 제가 시끄러워서 아이스크림 사줬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그동안 얘 숙제 도와준 거 아이스크림 하나로 대충 때우려고 그러는 거예요.”

학교 현관으로 들어가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이들의 겉모습과 일부 행동으로만 ‘착한 학생’과 ‘나쁜 학생’이라는 이분법적인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어렸을 때부터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극복하고 잘 대처할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부모가 해야 할 일 두 번째: 친구의 일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어떤 친구랑 어울리는지, 그 친구랑 오늘 뭘 했는지 물어보는 것이 자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며, 동시에 이것이 바로 아이와의 올바른 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공부 잘하고 왔니?’라는 말이 첫 번째였고 ‘친구들이랑 잘 지냈니?’라는 말이 두 번째라고 대답했다.

“현관에서 신발도 벗기 전에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하고 친구들하고 잘 지냈냐고 매일 물어봐요. 물론 그냥 일상적인 질문인 건 아는데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다 알아서 하는데 그만 좀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는 친구랑 은근히 잘 어울렸으면 하세요. 걔는 어디 학원 다닌다고 하고 방학 때 무슨 신문사 프로그램 캠프 간다고 하고. 저는 그런 말 들으면 나는 친한 친구들 따로 있으니까 엄마 보고 걔랑 친한 친구 하라고 말해요.”

“저녁밥 먹고 친구들이랑 우르르 걸어가서 학교 주차장에서 엄마를 만난 적이 있어요. 집에서 뭐 좀 갖다 달라고 부탁드렸거든요. 그런데 같이 있던 친구 중에 한 명이 화장을 좀 짙게 한 편이었는데 그 날 이후로 계속 그 친구 흉을 봐요. 그 애 엄마는 화장 그렇게 하고 다녀도 뭐라고 안 하시냐, 걔 공부는 잘하냐, 뭐 이런 얘기요. 전 그 애랑 사실 별로 안 친한데 엄마가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기분 나빠서 일부러 더 친하게 어울리는 척했어요. 엄마가 나중엔 제 눈치를 보면서 오늘은 누구누구랑 밥 먹었냐, 봉사활동에 같이 가는 친구들은 누구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서 은근히 제가 아직도 그 친구랑 어울리는지 확인해요. 제가 그 친구한테 물들어서 공부 안 하고 뭐 그럴까 봐 걱정해서 그렇다는 건 아는데 결국 저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잖아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은 말을 하면 마치 자기 자신이 비난받은 것처럼 기분 나빠하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친구 편을 든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지만 아이에겐 단지 지나친 간섭일 뿐이며, 오히려 부모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찌 보면 사소한 친구관계의 대화에서 한번 어긋난 이후 아예 자녀가 부모와 대화하길 거부하기도 하고, 심할 경우에는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받아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친구 관계에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해도 자녀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해라’라는 조언보다는 ‘그랬구나’라는 공감을 먼저 하면서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 왔을 때에는 일부러 함께 어울리려고 하는 것보다는 아이들끼리 편하게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설 필요도 있다. 만약, 자녀의 친구 중에 정말로 행실이 바르지 못한 친구가 있다면 무턱대로 그 아이와 놀지 말라고 말하거나 빙빙 돌려서 말하기보다는 “엄마는 그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옳지 못한 것 같아. 엄마는 너를 믿기 때문에 네가 그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이 너까지 안 좋게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떠니?”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게 좋다.


아이가 ‘내 친구니까 알아서 할게요’라고 대답한다면 ‘그럼. 엄마는 네가 잘할 거라는 거 알아’라고 말하면서 자녀에 대한 믿음을 표현해 줘야 한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믿음과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라면 설령 알아서 하겠다는 대답을 했다 하더라도 부모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듣지는 않을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올바른 방법인지를 천천히 생각한 뒤, 결국 부모의 조언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가 해야 할 일 세 번째: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자

아이가 부모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반항적으로 행동하는 등 심한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친구와의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누구랑 어울리는지를 담임 선생님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담임 선생님은 담당하는 학급 아이들을 아침 조회시간이나 청소시간, 그리고 아주 짧은 종례시간에 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아침 조회시간에는 숙제를 하거나 개인 공부를 하고, 청소시간에는 말 그대로 맡은 구역 청소를 해야 하며, 종례 시간에는 맡겨놨던 핸드폰을 받고 집으로 가거나 아니면 빨리 보충 수업하는 교실로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자신의 학급에 들어가 수업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오히려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해주는 말을 듣고 누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등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부모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아이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아이와 계속 어울려 다니는데 아무리 대화를 하려고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에는 바로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이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누구랑 놀고 누구랑 놀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와 대화를 통한 상담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교과 선생님이나 다른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친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짙은 화장에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다니는 지혜(가명)는 학교 성적이 낮은 편이었지만 조용한 성격에 크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과 단지 비슷하게 하고 다니면서 주변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을 뿐 그리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지혜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속이 터질 만한 상황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지혜는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의상 디자이너라는 뚜렷한 진로도 가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지혜는 “같이 노는 친구들이 아무도 도서관에 안 가는데 어떻게 혼자 가요?”라고 대답했다. 주말에 다니는 학원 역시 자신과 그리 맞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다니니까 그냥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성향의 아이에게는 친구들에게 휩쓸리지 말고 너의 꿈을 위해 공부에 집중하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새 학기에 친구들 무리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난 뒤에는 그 무리에서 나와서 다른 친구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또래 집단’ 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반드시 그 무리 속의 리더 격인 아이와의 대화와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리더 역할을 하는 아이에게 학교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인 상담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가 좋아하는 교과 선생님과의 상담을 주선할 경우 아이가 행동을 바른 방향으로 바꿀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 해당 교과 부장을 맡도록 한 뒤 숙제를 걷도록 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반 아이들을 통솔하게 하다 보면 그동안 옳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 친구들을 이끌고 다녔던 아이는 올바른 행동을 통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되면서 조금씩 행동의 변화를 보인다. 지혜 역시 어느 날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같이 어울리는 무리 중에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아이가 ‘이제 곧 고2니까 공부하자’라고 하면서 함께 다니는 친구들을 죄다 학교 도서관으로 이끌고 온 것이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녀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기 시작하면 일단 ‘도대체 누가 우리 아이를 꼬드겼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자녀가 남학생이면 주로 담배를 피우거나 학원 간다고 거짓말하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여학생이면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하는 등 외모에 많이 신경을 쓴다. 거기에다가 아직 어린 줄만 알았던 딸이 남자 친구를 만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면서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선 남자 친구랑 있다가 밤늦게 왔다는 걸 알게 되면 무턱대고 핸드폰을 압수하거나 외출금지를 시키곤 한다. 나는 실제로 자신의 딸이 학원에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만나지 못하게 했던 남자 친구를 행여나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동안 몰래 딸을 뒤따라 다녀왔다고 고백한 어머니를 만난 적도 있다.


하지만 자녀와 긍정적인 대화를 꾸준히 나누면서 아이에 대한 부모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눈에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지만 이들은 스스로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힘을 가진 십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힘은 바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부모에게 좋은 영향을 받아 왔는지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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