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요. 특별히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책상에 앉아 있어도 집중이 안돼요."
내신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이 성적 관련 상담을 하면서 나에게 한 말이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의욕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온갖 미디어에서 외쳐대고 있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란 말 자체가 마음에 와닿기 어려운 건 당연한 것이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란, 말만 거창할 뿐 사실 단순하다.
즉,
첫째, 학습에 대한 동기를 가지고
둘째,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수정해 가면서
셋째,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
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가 하고 싶어서 공부계획을 세우고 공부한다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이걸 실제로 하고 있는 학생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쯤 되면 자기 주도적 학습이 잘 안된다고 해서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부모들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정말 잘했어요."
"말썽 한번 부리지 않고 늘 우등생이었어요."
라고 말하면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성적이 점차 떨어지는 자녀들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상위권 학생들의 특징인 자기 주도적 학습의 가장 첫 번째인 '학습 동기'에서부터 무너진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의 '넌 잘할 수 있어'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부모의 적극적인 '학습 동반자'의 역할에 힘입어 잘해 온 아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문제는 고등학교 때이다.
아침부터 야간 자율학습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 그리고 자율학습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것이다. 계획을 거창하게 세웠다 하더라도 꾸준히 실천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 주도적 학습의 첫 번째 단계인 학습에 대한 욕구나 동기부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때에도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학습 욕구가 생기게 될까?
내가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만난 상위권 학생들의 부모는 다 아이들의 '그림자'였다. 몇 년 전 내가 지도하던 학생이 전국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타고 시드니로 한 달간 무료 연수를 가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학생의 부모와 전화 통화는커녕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 또 다른 상위권 학생의 한 엄마는 아이의 학교 생활이 궁금해서 담임인 나를 찾아왔지만 마침 학교 쉬는 시간이어서 아이와 마주칠까 봐 교직원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나서야 나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수능 만점을 받은 한 졸업생의 엄마는 학생의 학창 시절에 담임인 나와 전화상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에게는 자신이 전화한 걸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며 전화를 끊기도 했다. 상위권 학생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 뒤에서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필요할 때 밀어줄 뿐, 일부러 앞에서 손을 내밀어 끌어당기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이렇게 아이의 그림자가 되는 건 쉽지 않다. 고등학교 때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텐데 아이 뒤에 서 있는 것은 왠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의 선택에 의한 학원이나 과외, 동아리 활동은 결국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없게 한다.
부모가 닦아놓은 길을 단지 걸어만 가는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겠는가.
용기를 가지고 직접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며, 잘못된 길이라는 판단이 들면 되돌아오기도 하고, 또 새로운 길을 다시 걸어가는 용기를 경험해보지 않은 아이가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라는 단어가 빠진 채 부모의 그림자였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어떻게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부모의 민감성이다.
내 아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아이의 행동을 관심 있게 바라보면서 이에 따라 민감하게, 하지만 두드러지지 않게 다가가는 것이다. 아이가 싸움이나 전쟁을 좋아한다면 역사 속 두드러진 전쟁 이야기나 시각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전쟁 영화를 함께 보러 가는 것도 좋다. 아이를 직접 데리고 관련 전시회나 박물관 견학을 통해 우리나라나 세계의 전쟁과 역사로 아이의 관심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나는 실제로 다른 과목은 죄다 평균 이하인데 한국사, 지리 등 사회탐구 과목 점수가 높은 학생을 본 적이 있었다. 이 학생의 취미는 컴퓨터로 하는 전쟁 게임인데, 이 아이와 상담을 하면서 전쟁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전쟁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과 실제 전쟁 모습을 담은 영화를 함께 보면서 세계사, 지리까지 관심 영역을 확장시켰고, 열 권짜리 삼국지 전집을 구매해서 함께 반복해서 읽기도 했다. 그 학생은 교내 한국사 대회에서 2, 3학년들을 제치고 1등을 하기도 했으며, 언젠가부터 국어와 수학 과목도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얼마 전 한국사를 정말 재미있게 강의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봤어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대학교에 가야 하니까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요. 영어는 이제 와서 하는 게 너무 어렵지만 국어랑 수학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공부는 하지 않고 전쟁 게임만 하는 아들에게 부모가 소리치면서 훈계만 했더라면,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한국사보다 국영수 과목에만 강제로 집중학습을 시켰더라면 이 학생은 절대로 이렇게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학습동기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부모가 아이의 '그림자'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상위권 아이들의 보충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신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이 얼마나 관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너희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공부를 스스로 했니?"
내 질문에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때는 부모님이 지금과는 다르게 공부에 관여하셨어요."
고등학교에 와서도 자기 주도적 학습이 자연스레 몸에 밴 학생들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면, 그러한 학생들의 부모는 현재와는 다르게 어렸을 때에는 공부에 관여를 했다고 한다.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도록 했고, 그걸 지키도록 지도하셨는데 주로 부모가 아이 옆에서 책을 읽거나 같이 공부를 하는 식으로 아이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라고 시켰다'가 아니라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부모들이 공부에만 매달린 건 아니었다. 주말에는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함께 다녔고,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아빠와 함께 저녁에 운동장에서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을 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꾸준히 함께 여가활동을 보낸 학생들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고민거리를 또래 친구들에게 보다 부모님에게 더 많이 이야기하고 정신적으로도 더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2학년 전교 1등이면서 리더십도 있어서 학급 반장을 맡고 있던 한 남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엄마가 자주 책을 읽어주셨어요. 초등학교 때에는 엄마가 책을 읽으시니까 저도 옆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고요. 학교 끝나면 계획 세운대로 공부하긴 했는데, 학원 가기 전까지 운동장에서 엄청 놀기도 했어요. 제가 축구를 좋아해서 운동장에서 축구하면서 노는 걸 계획표에 넣었거든요."
이 학생이 여전히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스스로 세운 계획을 지키며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스스로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지키려고 했으며, 공부 시간에는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 자연스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습관이 갖춰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이 어릴 적부터 계획을 세워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릴 땐 많이 뛰어놀아야지요."
"너무 계획대로 딱딱 맞추다 보면 창의성이 떨어지잖아요. 어릴 때는 아이가 그때그때마다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텍사스 오스틴 대학 심리학 교수이자 '스마트 싱킹(Smart Thinking)'의 저자인 아트 마크먼은 창의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창조적 행동 습관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일상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기 파괴적인 삶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는다. 그들은 규칙적인 삶을 산다.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하고 그런 일상에서 창의성이 나온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 동안에 글을 쓴다. 그에게 창의성을 만들기 위한 일상은 매일 잠자리에 드는 것만큼이나 규칙적이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른에게 조차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스스로 계획을 세워 지키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 습관 그대로 유지할 의지와 힘이 생기게 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또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문학 평론가 존 드라이든이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했듯이 부모가 만들어준 아이들의 습관이 나중에는 아이들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