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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Nov 19. 2020

내 아이는 지금, 교실에 혼자 있다

내향적인 아이들은 어떤 학교생활을 하고 있을까

  "세희(가명)가 이번 주에 친구들하고 자전거 타러 가기로 했어! 자기까지 포함해서 총 네 명이래! 그 얘기 듣고 너무 좋았는데 티 안 냈어! 그런데 너한테는 티 내도 되잖아! 너무 좋아!"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친구가 아침부터 전화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평소였다면 '그만 좀 소리 질러'라고 타박했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호들갑이라 조용히 친구의 말을 들어주고 '정말 잘됐다'라고 같이 기뻐해 주었다.


  친구의 딸은 굉장히 내향적인 아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내내 특별히 '친구'라고 부를만한 아이는 단 한 명뿐이었는데 "한 명이 있다는 게 어디냐"라고 나는 말했지만 친구는 "한 명 가지고는 안된다! 게다가 그 친구는 세희랑 반도 다르지 않냐! 학급 활동을 할 때 세희는 혼자 있을 텐데... 같은 반에 친구들이 좀 있으면 너무 좋겠는데 그게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며 내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세희가 중학교에 올라가고 난 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글쎄, 세희가 수업시간에 너무 조용 하대.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고 어쨌든 굉장히 조용한데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있다는 거야.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좀 믿음직한 아이들 무리와 세희를 같이 수업시간에 활동하도록 조를 편성했는데 세희가 자기 할 일이 끝나면 책상에 또 엎드려 버린대. 그렇게 하면 다른 친구들이 말을 걸고 싶어도 방법이 없는 거잖아. 얘는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친구는 고등학교 교사인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말하면서 '친구를 사귀라'는 어른의 바램은 내비치지 말고 단지 현재 세희의 상황에 대해서만 나름 객관적인 시각으로 말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내내 친구가 별로 없었던 경험 때문에 세희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똑같겠지'란 생각으로 그냥 책상 위에 엎드려버린 걸 수도 있어. 하지만 분명 세희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아이한테 친구 사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고 단지 네 할 일이 끝나도 다른 아이들은 더 궁금한 점이 있을 수도 있으니 엎드려 있는 건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다고 해. 그리고 그렇게 엎드려버리면 '나한테 절대 말 걸지 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혼자만의 시간 동안에 엎드려 있는 대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세희와 얘기해 봐도 좋고 말이야. "


  친구는 딸과 교실 책상에 엎드려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마지막에는 '엎드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겠다'라는 약속을 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세희가 그리는 그림들에 대해 친구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 딸이 친구들 부탁으로 아이돌 가수 얼굴을 몇 번 그리는 듯하더니 어느 날에는 친구들하고 만화카페를 가겠다고 용돈을 좀 더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늘 드디어 세희가 친구들 세 명과 자전거를 타러 간다고 말한 것이다. 

"조만간 친구들이랑 파자마 파티한다고 하는 거 아냐? 보통 여자아이들은 그런 거 한다고 하던데... 아 참, 파자마 파티하는 날에 남편보고 시댁에서 자고 오라고 할까? 딸 친구들 와서 자고 가는데 아빠 있으면 불편해 할 수도 있잖아?"

자기 딸에게 드디어 친구'들'이 생긴 것에 대해 딸보다 더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에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많은 학부모들이 자신의 내향적인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걱정을 한다. 실제로 내가 맡은 학급에 있는 한 남학생은 담임인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네, 아니오'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고개의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 학생을 볼 때마다 '교실에서 참 외롭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틈 날 때마다 아이에게 사소한 말을 하곤 했는데 글쎄 며칠 전 그 학생이 다른 반 친구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가다가 배꼽 잡고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내향적인 아이들에게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괜찮아요. 물론 주변 어른들은 친구들 무리가 형성되길 바라겠지만 그건 쉽지 않은 바람이겠지요. 정말 더도 말고 단 한 명만이라도 있으면 학교 생활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 친구 사귀는 걸 힘들어해서 학교 가는 걸 거부하던 반 학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 상담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난 뒤 나는 학교에 주로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더욱더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전달사항이 있어서 교실에 갈 때마다 우두커니 혼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친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조용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살짝 독특한(?) 행동을 자주 해서 아이들로부터 '쟤는 딱히 싫지는 않지만 같이 조별 활동을 하기는 싫다'라는 말을 듣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어울리는 친구가 있다. 상담 선생님 말씀처럼 나와 함께 하는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꽤 괜찮은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단 한 명의 친구조차 없는 경우이다. 전에 교사모임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 선생님께서 친구를 사귀기 위한 조건으로 '기대와 의리'를 꼽았다.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철벽을 치고 '나 혼자서도 전혀 문제없다'는 식으로 있으면 안 돼요. 내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한테 뭐하러 옆에 가겠어요? 좀 뭔가 허점도 보이고 도와달라고도 하고 그래야 '쟤는 내가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챙겨주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나서는 그 기대가 꾸준히 이어지게끔 의리를 지켜야 해요. 여러 명이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에서는 늘 이런 의리를 지킬 필요는 없어요. 나 없어도 저 친구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거니까요. 하지만 둘셋 정도로 이루어진 조용한 성향의 아이들 무리의 경우에는 그 의리가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같이 안 하면 저 친구는 혼자일 테니까요."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들과 곧잘 이야기하는 권지호(가명)는 안타깝게도 친구가 없었다. 어느 날에는 '저 빈자리, 누구 자리야?'라고 물었을 때 반 아이들은 '누구 자리더라?'라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할 뿐 '지호 자리예요'라고 말을 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교실에서만 조용할 뿐이지 교무실에 종종 와서 선생님들에게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지호의 모습에 '왜 친구들하고는 저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란 생각이 들곤 했다. 현장 체험학습 때는 반 아이들과 어울려 가지 않고 맨 뒤에 있는 내 옆에 와서 같이 걸어가기도 했다. 학기 초 상담하던 중에 '저는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딱히 불편하지는 않아요'라고 말하던 지호였지만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교실에서는 볼 수 없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조별로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지호는 같이 조원을 하자고 온 아이들 무리에게 '나는 혼자 하는 게 편하다'라고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먼저 다가오는 친구들에게조차 '괜찮다'라고 말하는 지호는 정말로 혼자 있는 게 괜찮은 것일까?


  나는 교실에서 내향적인 학생 세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와 지호를 일부러 한 조로 묶어서 영어 수행 활동을 하게 했다. 그 무리의 아이들은 조용하긴 했지만 항상 셋이서 다녔고, 위에서 언급했던 '기대와 의리'로 똘똘 뭉친 아이들이었다. 활동은 멘토-멘티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공부를 나름 열심히하는 지호가 같은 조 아이들과 함께 끝까지 활동을 끝내지 못하면 조별 점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지호는 점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마다 조별 아이들과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시간에 조용히 활동할 수 있는 빈 교실이 어디 없냐고 나에게 묻는 지호의 표정에서 '귀찮은데 억지로 하는 거예요'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귀찮기만 했을까? 교무실에 혼자 와서 선생님들에게 농담을 하던 지호가 언제부턴가 조별 아이들 셋과 함께 교무실로 와서 떠들고 가기 시작했다. "혼자 왔을때도 시끄러웠는데 넷이 오니까 더 시끄럽네."라고 타박하는 국어 선생님 조차도 사실은 늘 혼자오던 지호에게 친구들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넷이서 함께 식당으로 걸어가는 걸 보았다. 아이는 모르겠지만 부모나 선생님 같은 주변 어른들의 작은 도움으로 지호가 드디어 '기대와 의리'를 갖게 된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알아가는데 쓸 시간이 없다. 그들은 가게에서 완성품을 산다.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가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제 친구가 없다"라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완성된' 친구를 한 번에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서로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저는 친구는 없어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별거 아니다. 그저 관심 어린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어른인 내가 필요한 순간에 마치 그림자처럼 쓰윽 다가가 주면 되는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 벤 존슨이 '진정한 행복을 만드는 것은 수많은 친구가 아니라 훌륭히 선택된 친구들이다'라고 말했듯이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쌓은 우정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설령 그 행복이 단 한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가진 천성적인 우울한 성격을 고쳐서 나의 청춘시절을 다치지 않게 새벽처럼 유지시켜 준 것은 우정이었다. 지금도 난 이 세상에서 친구들 사이의 성실하고 훌륭한 우정만큼 멋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고독할 때 청춘에 대한 향수가 나를 엄습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학창 시절의 우정 때문일 것이다."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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