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Aug 30. 2023

너는 혼자가 아니야

든든한 어른이 필요한 이유

  몇 년 전 우리 반에 효성(가명)이라는 전학생이 왔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중학교 때부터 친구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왔는데 여기에서는 잘 지낼 수 있도록 부탁한다며 아이 앞에서 나에게 말했다. 학생에게 상처였던 이야기를 아이 앞에서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있는 교무실에서 꺼냈다는 것에 좀 놀라웠지만(보통은 아이나 다른 교사가 없는 곳에서 담임과 조용히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서 좀 걱정이 되었다. 이후 학생과 간단한 면담시간을 가졌는데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며칠 뒤 효성이가 반 아이들이 자기 험담을 한다며 나에게 왔다. 내가 자세한 상황을 묻자, 효성이는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자기 이름이 여러 번 나왔고 아이들이 자기를 보며 수군거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무리 중에 한 명이었던 부반장을 불러 조용히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

"네? 그런 적 없어요! 저는 효성이랑 아예 말을 해 본 적도 없는데요? 아! 혹시 이건가? 주말에 김효정이랑 같이 영화 봤거든요. 애들한테 그 얘기한 건데... 효정이랑 효성이, 좀 발음이 비슷한데 효정이 이야기한 걸 자기 얘기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다행히 그 사건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그 이후에도 효성이는 나에게 종종 찾아와 아이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얼핏 들으면 사소한 일들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효성이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짝꿍이 자기에게 "야, 지우개 좀"이라고 말하고 지우개를 빌려 쓰고 다시 줬는데 자기는 빌려가라는 말도 안 했는데 가져갔다며 자기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나는 어머니와 상담 전화를 했다.

"어휴, 선생님. 우리 효성이 일로 선생님께 폐를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집에서는 제가 효성이한테 네가 참아라, 친구끼리 그럴 수 있다, 별 것도 아닌데 그냥 넘기라고 말해요. 오늘도 효성이가 집에 오면 친구들끼리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 것 가지고 왜 그러냐고 혼낼게요."

 순간 나는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한 아이들을 인터뷰한 장면이었는데, 한 여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네가 그냥 참으라고 하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제 편은 없는 거였죠. 가끔 생각해요. 엄마가 저한테 얼마나 힘들었냐고, 괜찮은 거냐고 물어봐 줬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렇게 살진 않았을 것 같아요."


  지수(가명)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반 아이들이 다 자기를 싫어한다면서 반 전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몇 년 전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그 일 이후로 딱히 일은 하지 않고 집에서 주로 누워 있다고 했다. 지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는데, 남편을 잃고 난 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한참 동안 이야기하셨다. 나는 지수의 상황을 말하면서 학교에서도 상담을 통해 잘 이끌어볼 테니 집에서도 관심과 상담을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수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몇 번 더 어머니와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자다가 선생님 전화 와서 깼다"면서 죄송하다, 우리 딸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만 반복했다. 


  물론 학교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 일들을 쉽게 넘겨 버리는 '쿨함'은 필요하다.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더 필요한데, 누가 "넌 그것도 모르냐?"라고 말하면 "그럼 넌 얼마나 잘 아냐?"라면서 받아칠 줄도 알아야 하고, 매점 갈 거면 뭐 좀 사다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지금 안 갈 거야"라고 거절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쿨함은 어느 정도의 대담함이 있어야 가능한 태도이며, 어른들 조차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게 사실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별것 아닌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 아이가 부족해서라던가, 예전부터 왕따 경험이 많아서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고 여기는 건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나에게는 사소한 것이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힘들 정도로 큰 일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너는 왜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냐?"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대체로 힘든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혹은 어떤 일을 오해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자면, 그런 아이를 제대로 이끌어 줄 '어른'이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학생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전에 과연 우리 어른들은 제대로 된 역할모델이 되어준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 반성해봐야 한다.


  의사이자 작가로도 유명한 서천석의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이래서야 어른이 되어서 잘할 수 있겠어요?"
부모들은 하소연합니다.
잘하면 이미 어른이겠지요


  아직 부족하고 배워야 할게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미(未) 성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무조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질책하기보다는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이야기해 보고, 당시에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 게 더 올바른지에 대해 알려주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 것인지에 대해 이끌어줘야 하는 게 바로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아이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씨앗들이 자라게 해주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



  










이전 15화 우리는 한 번도 부모인 적이 없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