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Sep 27. 2023

부모와 자녀사이에 거리두기

  수업시간마다 종종 엎드려 자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상담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 제 아이지만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집에서도 휴대폰만 잡고 있고 저랑 말도 잘 안 해요.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 2학년때까지 항상 엄마 말에 토 단적 없이 착한 아이였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한숨을 쉬며 내게 하소연했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올라가면 부모도 바빠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음악, 미술, 체육 위주의 예체능 교육에 집중하고, 아이가 3-4학년이 되면 서서히 영어, 수학, 논술, 과학 공부를 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누구네 집 아이는 벌써부터 중학교 수학을 한다는 말이나, 고등학교 영어 수준은 중학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서 미리부터 해 놓지 않으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의 마음은 더더욱 바빠진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는 아이의 매니저가 되어 유명한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을 섭외하기도 하고, 학교 선생님보다 더 많은 진학 정보를 가지고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유명한 대학교나 신문사에서 하는 진로캠프에 제출할 지원서를 아이가 아닌 엄마가 직접 쓰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 중에서는 부모에게 특별히 반항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착한 아들, 딸'처럼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 역시 자신의 뜻대로 성장하고 있는 자녀를 보면서 뿌듯해하고 동시에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있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확신은 대게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깨진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아이들은 엄청난 양의 공부와 경쟁심 때문에 많은 압박을 느끼는데 이것은 고등학교 이전에 느꼈던 경험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중학교 때와는 다른 깊이와 사고를 필요로 하는 방대한 양의 지식들이기에 단순히 머리가 똑똑하거나 암기를 잘하는 학생이 성적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공부 방향과 패턴을 직접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 동안에 남다른 집중력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습관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 스스로 오랫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에게 알맞은 방식을 만들어 와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미리 닦아 놓은 길을 걸어온 아이들은 정작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 채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시기를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어렸을 때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성장했을 때 얼마만큼 독립적이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가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인 유아 시절에 부모는 아이와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과 아이가 하나라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는 집착에 가까운 몰두에서 자연스레 벗어나고 아이는 조금씩 좌절 경험에 대한 내성을 기르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즉 부모는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외부 세계를 보여주고 그 세계를 탐색하도록 도와주며, 아이의 반응을 너무 오래 기다리지도 않고 너무 조급하게 이끌지 않으면서 아이로 하여금 올바른 독립성과 자율성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행동을 통해서 아이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배워 나가게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 갖기→계획 세우기→실천하기’라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자립적인 아이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아이들은 고등학교에서 겪게 되는 엄청난 공부의 압박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주변의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밝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역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가르침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 ‘미움받을 용기’에 따르면, 아이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부모는 대개 ‘아이의 인생은 곧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책 속에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철학자는, 

“부모는 아이의 과제까지도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떠안고 있는 것일세. 하지만 어느 정도 아이의 과제를 떠맡았다고 한들 아이는 독립적인 개인이지. 부모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 진학할 학교나 직장, 결혼 상대, 일상의 사소한 언행마저 부모의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네. 당연히 걱정도 되고 개입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일정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의 학교생활이나 학업에 너무 깊이 관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다 아이를 위해서 그러는거에요”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이런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할 능력조차 키우지 못한 채 부모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이러한 부모와의 너무 깊은 관계를 끊고 스스로 자립하려고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부모는 “그동안 착하기만 했던 아이가 변했다”면서 당황하거나 그런 아이들을 더욱더 강하게 몰아붙이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부모가 고등학교 자녀와의 거리를 둔다는 것은 ‘네 인생에 관여하지 않겠다’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만의 사생활을 이해해 주고, 아이가 하는 말을 경청하면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준다면 아이는 적절한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부모로부터 보이지 않는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사회 속에서 성장하게 될지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부모 노릇도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굴레가 됩니다.

그러니 '너를 위해 내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자식 인생도, 부모 인생도 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


 

  





이전 16화 너는 혼자가 아니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