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Oct 04. 2023

언어폭력의 가해자, 부모

  평소에 조용하고 내성적인 유건(가명)이가 보충 수업 조퇴를 하려고 교무실로 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도 충혈되었기에 얼른 부모님께 먼저 전화를 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엄마랑 통화하는 유건이의 얼굴 표정이 차츰 일그러졌다.

“아니, 지금 진짜 아프다고! … 정규 수업은 다 끝났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진짜 아프다고! 알았으니까 전화 끊어.”

전화를 끊고 난 유건이는 교무실에서 시끄럽게 해서 죄송했다며, 보충수업을 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눈이 충혈되고 많이 부어서 눈병일 가능성이 있으니 그냥 조퇴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집에는 연락해 놓겠다고 했다.

나는 유건이 어머니에게 아이가 눈병일 경우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병원에 다녀오라고 보냈다고 전화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걸 수도 있다면서 학교에서 좀 엄격하게 아이를 잡아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어머님, 유건이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진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난주에 모의고사 본 날에도 늦게까지 남아서 자율학습 하는 걸 봤어요. 중학교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유건이는 학교에서 노력파로 통해요. 아이를 믿고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은 안과에 꼭 가야 할 상태인 것 같아서 보충수업하지 말고 병원에 가라고 한 거예요.”

내 말에 유건이 어머니는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며 말했다.

“자율학습하는 척만 하다가 게임했을 거예요. 유건이 말을 다 믿으시면 안 돼요, 선생님. 앞으로는 조퇴한다고 해도 절대 보내지 말아 주세요.”


  통화를 끝내고 난 뒤 나는, 가장 의지해야 할 엄마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지 않는 유건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물론 아이가 중학교 때 공부를 하지 않고 말썽을 많이 부려서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쳐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대상인 ‘부모’로부터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는 학교나 사회 어디에서도 신뢰와 믿음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며칠 뒤, 유건이가 조회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학교에 왔다. 조용히 불러 자초지종을 물으니, 엄마와 아침에 크게 싸우고 좀 늦게 왔다고 말했다. 

“엄마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아요. 그러면서 저한테 그렇게 행동한 제가 잘못이라고 말해요. 처음 고등학교 올라왔을 때 같은 중학교 나온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그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네가 엄마한테도 믿음을 안 주는데 어떤 친구가 널 믿겠냐고 말해서 진짜 화났었어요.”     


   교육학을 공부해 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가 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로버트 로젠탈 교수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무작위로 아이들을 뽑아 그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이 아이들은 지능이 매우 높다”라고 말했는데, 8개월 뒤에 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월등하게 높았다. 교사가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더 많은 관심과 칭찬을 해 주는 것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실험인데, 비단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역시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 한마디가 결국 아이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아온 부모 입장에서는 공부를 잘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울대를 나와도 직장 구하는 것이 어렵다’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겪는 공부 실패가 곧 앞으로의 인생 실패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좋아.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은 왠지 부모로서 도리와 의무를 다 하지 못하는 것 같고 뻔히 보이는 실패의 길로 아이들을 내팽개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공부를 하게 만들기 위해 부모나 교사가 내뱉는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되며, 오히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곳 하나 없다’라는 생각에 아이들은 더 삐뚤어지고 공부와 담을 쌓게 될 수도 있다. 특히 내신고사 마지막 날 친구들과 자유를 즐기고 싶은데도 엄마가 그날에도 공부를 하라고 말하며 강요한다면 아이는 책상에 앉아만 있을 뿐 공부에 집중을 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적대심만 깊어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와 많이 싸우게 된 부모는 결국 아이의 학교 생활이나 학업에 관심의 끈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늦잠을 자주 자서 학교에 늦는 아이를 크게 나무라지 않거나, 심하게 아프지 않은데도 학교 정규 수업을 조퇴하고 집에서 쉬도록 허락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억지로 공부를 시킨다고 잘 되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 부모들에게 나는 단호하게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의 공부 가능성에 대한 끈을 놓아버리게 되면 아이의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학교 수업태도나 생활태도 역시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조금씩이라도 계속 학교 생활과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면 어느 순간 어떤 과목에 대한 흥미를 느끼기도 하고, 우연히 조별 활동에서 칭찬을 받게 되어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수업시간마다 엎드려 자거나 반 분위기를 흐리게 만드는 학생의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 친한 미술 선생님에게 ‘그 학생의 아주 작은 사소한 점이라도 칭찬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미술 선생님은 고맙게도 그 학생에게 굉장히 창의적으로 자신을 잘 표현한다고 칭찬한 것도 모자라 ‘미술수업 부장’을 시키기까지 했다. 아이는 미술 시간 직전마다 칠판 정리를 하는 것은 물론 반 아이들의 숙제나 수행평가를 걷는 등 미술 부장으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미술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시간에도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가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칭찬을 많이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어머니 역시 아이에 대한 끊임없는 칭찬은 물론, 반 전체에 간식을 돌리며 아이의 기를 세워주기도 했다(현재는 학급 전체에 간식을 돌리는 걸 지양하고 있다). 성적이 낮고 산만했던 아이는 부모와 교사의 격려로 인해 결국, 4년제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선혜 부모교육전문가는 ‘위클리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가볍게 주고받는 부모와 아이의 일상 속 대화에도 수렁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부해라’, ‘숙제했니?’등은 부모가 자녀에게 흔히 하는 말입니다. 부모들은 이런 말에 자신의 사랑을 담았으며, 소통의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와 대화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고, 자녀들은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김수희 교육 전문가는 부모의 한마디 말에 따라 자녀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네가 뭘 할 수 있어? 넌 고집만 세서 안돼’라는 부정적인 말을 한다면 그 자녀는 점점 의기소침해져서 더 이상 미래의 꿈을 볼 수 없을 테지만,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고맙고 사랑해'라며 부모가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자녀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자신감을 향상할 수 있다고 한다.

 “아동학대니 학교폭력이니 하는 이야기를 학교기관에서 운운하고 있지만 사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많은 폭력과 학대를 일삼고 있다. 너무 막무가내인 자녀들도 있다 보니, 부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녀에게 부정적인 상처를 주는 말을 건넬 수 있다. 스스로가 ‘이 말은 좀 심하다’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건네는 것이다. 누가 우리 자녀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잘못을 운운하기 전에, 부모들이 자녀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더 많은 상처를 주거나 비교육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한 공간 안에 있는 부모이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또 그 상처를 위로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상은 부모가 더 심각한 가해자이다”     


  부모도 사람이기에 자녀에게 실수를 한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작은 실수'라고 여기는 것이 아이에게는 쌓이고 쌓여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결국 아이의 생각과 태도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 한마디, 너를 믿고 있다는 따뜻한 눈빛, 상처 주는 말을 했을 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태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변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인 셈이다.               


       


우리가 만나

       -박노해


처음 해보는 부모 노릇,

처음 해보는 아이 노릇,

모자라고 실수투성이인 우리가 만나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고 채워주며

언젠가 이별이 오는 그날까지

이 지상에서 한 생을 동행하기를





이전 18화 내 아이를 훈육하는 현명한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