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과 마음에 대하여
출판계는 오랜 숙제이자 앞으로도 계속 풀어야 할 숙제인 ‘독자와의 거리 좁히기’를 꾸준히 시도해 왔다.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서점은 서점대로 ‘불황의 늪’이라는 작금의 상황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동네 서점의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들의 굿즈 개발, 저자의 인플루언서화, 편집자의 부상(浮上) 등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변화했다. 책 특유의 엄숙주의에도 균열이 생기면서, 책은 어디에든 있고 곁에 두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물건이라는 공감대가 점차 만들어지는 듯하다. 물론 여전히 독자와 비(非)독자와의 벽은 높지만, 이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더라도 언제라도 편히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고 벽을 뚫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서점을 다룬 책이 본격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작은 서점이 ‘돌아왔다’고, 그런데 심지어 책방에서 ‘술’도 마실 수 있다고 화제가 되었던 “북바이북”, 이 작은 서점의 이야기가 책 『술 먹는 책방』으로 출간되었다. 동네 책방이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하던 2017년에서 2018년 사이에는 『도쿄를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 책방 탐사』, 『서점은 죽지 않는다』,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 등 일본의 작은 책방을 다룬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우리 주변의 동네 서점 이야기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는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 “사적인 서점”의 이야기를 담았고, 『서점의 일』은 단단하게 서점을 운영하는 서점인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그리고 책방을 다룬 책을 읽은 독자는 직접 그 공간을 방문했다. 이색 서점과 서점의 이야기가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점점 멀어져 가는 사람과 책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히려는 시도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러한 시대 속에서, 나는 독자에게 책을 ‘팔겠다’라는 생각으로 일하지 않는다(팀장님이 보시면 큰일 날 소리지만……). 그럴싸한 사은품을 만들고, 포인트를 주고, 대량의 이메일이나 문자로 광고 메시지를 보내는 일로는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MD는 제2의 편집자로서 책과 독자 사이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MD가 하는 일은 ‘판매자’에서 ‘기획자이자 편집자’로서의 성격이 더 짙어지는 중이다. 저자로부터 무형의 콘텐츠를 물성을 가진 책으로 만드는 사람이 편집자라면, MD는 그 콘텐츠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2차 편집을 해야 한다. 책의 내용, 저자, 출판사의 이야기를 살피고, 사회문화적인 이슈와 연결하고, 독자와 책 사이, 책과 책 사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매일 쏟아지는 책들 사이사이에서 MD도 발견하고 기획하는 일이 많아졌다.
발견의 대상은 주로 책이지만, 때로는 ‘독자’가 되기도 한다. 어떤 독자를 어디에서 발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서점으로 데려와 책과의 거리를 좁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된다. 서점 안에서만 머무르며, 방문하는 독자들과의 소통에만 집중하던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지금의 MD들은 서점 밖으로 나와 독자를 찾아다닌다. 독자들이 모인 곳에서 리스너로 있다가도, 상황에 따라 스피커가 되기도 한다. 필요하면 커뮤니티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는데, 이제는 독자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IT 분야를 담당하는 나는 페이스북에서 개발자 독자들과 대화하고, IT 책에서 건져낸 다양한 주제에 관한 콘텐츠를 노션을 이용해 공유한다. 책을 소개하고 파는 행위보다는 독자가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두는지 자세히 살피고,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는 일,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일.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가는 일이 MD인 내가 하는 일이다.
이미 독자는 출판사, 서점, 저자, 역자, 편집자, 디자이너 들과 직접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능동적으로 책 생태계를 함께 가꾸어 나가고 있다. 출판 생태계 안에서 공동체인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져야 한다. 출판 시장은 늘 어렵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고, 풀어 나가야 할 숙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책을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읽는 사람 할 것 없이 가깝게 그리고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미있게. 신나게. 책으로 대동단결.
독자여, 제가 기꺼이 그대 있는 곳으로, 그쪽으로 가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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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공동체 '편않'에서 발행하는 독립잡지「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7호 [기획] '거리에 대하여'에 기고한 글입니다.